소금의 사명

By 담임목사 on July 5, 2020

본문: 누가복음14장34-35절
제목: 소금의 사명

본문은 예수님께서 소금의 비유로 들어 우리 믿는 성도들이 지녀야할 자세를 교훈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人類 文明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별히 그 변화는 食 文化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소금이 가지고온 특성 중 하나는 맛과 보관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상은 인간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道德과 倫理가 땅에 떨어져 죄악이 노골화된 세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世態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 된 세상에 오신 것처럼, 죄악으로 범람해 가는 이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우리를 불려주시고 소금의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소금이 무엇입니까?

1. 소금은 썩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자장면과 고등어자반이었습니다. 자장면은 1년에 한두 번 특별한 날 온 가족이 중국집에 가야 먹을 수 있었고 고등어자반은 소금을 뿌려 말려 소금항아리에 묻어 두었다가 아버지가 입맛이 없을 때 드시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눈으로 보기만 하는 그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소금항아리에 넣어 두면 소금이 방부제 역할을 하여 썩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데,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의 소금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죄악으로 만연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의 맛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영화에 ‘쪽 팔려서’는 대사가 나옵니다. 뒷골목에 건달에 살인죄를 뒤집어쓰며 法廷에서 한 말입니다. 조금 저질스런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 성도들 가운데 ‘쪽 팔려서’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성도로써 ‘쪽 팔려서’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이런저런 行動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성도가 날마다 더해지기 원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世態는 쪽팔리더라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팔색조와 같이 萬에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꽉차있습니다. 때문에 이 시대의 우리 믿는 성도들은 죄로 혼탁해 가는 이 세상에서 죄악을 막아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썩어 가는 世態에 썩지 않은 방부제로써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美國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Trump’아니면 ‘Biden’이냐 고심 중에 있습니다. 종교적 성향으로는 Trump를 찢어야 하는데 과연 이 세태에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祖國 大韓韓國에 미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배신도 잘 하고 겁도 많은 베드로에게서 교회의 기초가 되는 반석을 발견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진 거칠고 급한 성격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에게서 교회의 기둥을 발견하셨고, 주님은 병약한 바울에게서 교회의 터를 발견하셨습니다. 주님은 나 같은 사람에게서도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셨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위해 소금이 되라고.

2. 소금은 맛을 냅니다.

客地에 나가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먹고 자은 것입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설치고 먹은 음식이 새롭고 맛을 있지만 조미료를 가지고 맛을 낸 음식을 먹고 돌아오면 그 후유증 한 참 동안이나 이어집니다. 그리고 간이 맞지 않아 힘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삼 소금의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평소 우리는 소금의 량에 따라 길들어져 소금의 량이 변하면 입맛에 안 맞아 고생을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령입니다. 더하면 짜고 들 하면 싱겁고 간을 맞춘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女人네들이 간을 맞추다보면 인생이 다 과 황혼기가 찾아와 허무하고 쓸쓸하다고들 합니다.

어느 부자가 전쟁이 일어나 피난길에 오르면서 딸들에게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만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딸만 셋을 두었는데, 첫째 딸은 장롱 속 깊이 숨겨놓은 금을 보자기에 싸들고 가고, 둘째 딸은 현찰과 보석을 싸들고 나가고, 막내 딸은 장독대로 가서 소금항아리을 열고 소금을 싸서 들고 나갔습니다.

몇 날이 지나 집에 싸가지고 나온 음식을 다 떨어져 아버지 딸들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나왔느냐고 소금을 싸들고 나온 막내는 온갖 꾸중을 다 듣게 됩니다. 이런저런 음식 재료들을 사가지고 저녁상을 차렸는데 아버지가 화를 내며 식사를 안 하십니다. 싱겁고 맛이 없다고 투정을 합니다.

이유는 소금이 금값보다 비싸고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소금을 귀함을 알게 된 아버지는 막내를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맛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의의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입니다.

3. 소금은 희생합니다.

소금은 그 사명이 녹아 방부제로 쓰여 지고 맛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것입니다. 우리 몸에 염분이 부족하면 탈진하여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때문에 소금이 부족하면 몸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입니다.

요한복음12장24절에 “한 알이 밀알이 썩지 않으면 그대로 있고 썩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 뿌려져 썩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썩어지려고 하지 않고 남아있고자 하여 이 세상은 치료 불능의 세태가 될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목동이 저녁에 양을 몰고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한 곳에 이르러 양들이 가벼운 상처를 입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목동을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거기에 작은 가시나무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목동은 도끼를 들고 ‘양들을 상처 입히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목동은 그 가시나무를 자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시나무에 걸려 있는 양털을 새들이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목동은 중얼거리며 돌아섰습니다. “양들이 상처를 입음으로써 새들이 그 털로 부드러운 둥지를 트는구나.”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피조물은 그 어느 하나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 자연의 질서 속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누군가의 생명을 보존한다는 眞理를 알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어느 지방의 철도 연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철길을 따라 학교에 가다가 간밤에 내린 폭우로 철도가 끊긴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기차가 지나갈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기차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수백 명이 희생당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차를 멈추게 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지나갈 시간은 점점 다가왔습니다.

소년은 자기의 셔츠를 벗었습니다. 그리고는 책가방에서 작은칼을 꺼내어 자기 넓적다리를 찔렀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피로 흰 셔츠를 물들였습니다. 소년은 피를 흘리면서, 피로 빨갛게 물든 셔츠를 흔들며 기차가 달려오는 쪽으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스톱! 스톱! 스톱!” 기관사가 붉은 깃발을 보았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기차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차는 소년 앞에서 간신히 멈출 수 있었습니다. 기관사가 뛰어내려와 보니 철도는 끊어져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기차를 세우기 위해 많은 피를 흘린 소년을 부축해 보았지만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기차가 갑자기 정지하자 ‘무슨 일인가?’하고 기차에서 내려왔던 승객들은 이 사실을 알고는 기관사와 함께 그 소년을 부둥켜안고 ‘소년의 피로 우리가 살았구나!’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 그 기차 속에는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그 자리에서 돈을 모아 소년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가지고 다니던 책가방 속에는 신약성경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성경의 말씀인 ‘한 알의 밀’의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의 삶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좋은 사명인 소금과 같은 것입니다. 맛일 잃지 않고 사명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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