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하나님

By 담임목사 on December 8, 2019

본문: 로마서15장7-13절
제목: 소망의 하나님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소원을 품고 살아갑니다. 소원과 소망이 비슷한 말 같지만 소원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생겨나지만 소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소원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쉽게 포기하지만 소망은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그 어려운 상황을 선하게 하신다고 믿고 견디며 하나님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시편71편5절에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소망가운데 나고 소망가운데 살며, 소망가운데 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이란 누구나의 머리 위에 머물고 있는 구름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말 못할 고통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存在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5장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당하는 고통은 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부터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5장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 했고, 본문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다’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십 일간 광야에 계시면서 사탄을 물리치시고 많은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숨을 거두시고 장사하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머물며 부활한 몸을 많은 사람에게 보이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며 일하시면서, 우리를 향하여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로 구세주로 영접하고 예수와 동행하고 있다면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을 주시는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죄인들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新約聖書 마태목음5장9장13절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하셨고, 로마서3장10절에 사도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요즈음 살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즉 앞이 어둡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두 아이를 둔 家長이 가계에 손님이 없어 한 숨을 쉬며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때 두 아이가 店房 안으로 달려 들어오며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 거리가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는 별을 볼 수 없지요?’ 밤하늘에는 ‘소망과 진리’ ‘사랑과 친절’ ‘온화함의 별’들이 있습니다. 그 별들은 언제나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이 어두워야 그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이 밝아오기까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을 우겨쌓고 있는 고난과 고통의 어두움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의 별‘을 볼 수 있는 길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죄를 통회 자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면 고난과 고통과 번민이 다 사라지고 육신의 병까지도 깨끗하게 나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자에게 사죄의 은총과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하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요한복음14장13절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는 길이기 때문에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장35절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께서도 온종일 모여든 사람에게 시달려 피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새벽미명에 한적 한 곳이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소망을 둔 성도들에게 기도는 하늘 창고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구약성서 역대하 32장24절 이하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병들게 죽게 되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병을 고쳐 주셨으나 다시 마음이 교망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히스기야가 교만함을 뉘우치고 회개하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그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다만 기도로써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위기에 처한 유다를 앗수르의 산헤림 군대에게서 구해 내었고, 그의 생명을 15동안이나 연장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의 죄악을 미워했습니다. 우리들도 사람과 사람의 죄를 구별할 수 있어야, 사람에게는 자비를 위하여 기도하고, 죄악에 대하여는 정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이며 모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길지 않으나 온전했습니다. 충실한 기도는 반드시 효험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자비로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격려를 받았으며 예루살렘 성은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舊約聖書 예레미야 29장11-1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시며,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무릎을 잘 꿇는 자가 가장 잘 서 있는 자입니다.

3. 의인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시편34편14-15절에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라고 했고, 시편11편7절에는 “여호와는 의로 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천대와 조롱을 받고 학대와 배척을 당해도 오히려 기뻐함으로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고 날마다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아 믿는 성도로써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야 우리의 소망이 헛되지 않고, 우리가 수고하는 온 정성을 다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기 때문입니다.

거지가 돈을 많이 쓴다고 부자가 아니고, 부자가 돈을 많이 쓰면 그는 부자입니다. 죄인이 선을 행한다고 의인됨이 아니고, 의인이 선을 행할 때 그는 의인입니다. 아무나 노래를 부른다고 가수가 아니고, 가수가 노래 부를 때 그는 가수입니다. 쭉정이가 고개를 높이 든다고 알곡입니까? 머리 숙여도 씨앗이 들어있어야 알곡이지요.

죄인이 교만하여 우쭐한다고 의인입니까? 겸손하여 머리 숙여도 예수 생명 있는 자가 의인입니다. 군함 한 척이 어느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그 군함에는 스티븐스라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그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스티븐스가 청렴한 생활과 성실한 기도 생활을 하며 항상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군함이 전투에 들어서자 배에 탔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티븐스 곁으로 다가왔으며, “스티븐스를 붙잡아라. 스티븐스를 붙잡아라.” 하는 말이 퍼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위험을 만나 죽을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사람을 붙잡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진실 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Paul Hill’는 소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소망은 우리에게 장차 큰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준다. 둘째, 소망은 우리에게 그 기쁨과 행복의 실상을 드러내 준다. 셋째,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그것들을 기다리게 하며 그들을 위하여 모든 고난을 견뎌 내개 해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소망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을 확실히 믿을 때 우리 믿음도 성장하고 기쁨과 평안이 오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과 기도하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과 의인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들이 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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