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길

By 담임목사 on February 16, 2020

본문: 여호수아1장5-9절
제목: 승리하는 길

歷史 속에 한 시대를 回顧할 때 文化遺産은 그 시대의 文明의 수준을, 그리고 文化藝術은 그 시대의 삶이 質과 윤리적價値 그리고 知的수준을 보여주는 자료가 됩니다. 요즈음 全世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韓國의 Black Comedy Suspense 映畵 ‘Parasite’가 우리 동내 映畵館에서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철옹성 같이 높고 견고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미국의 國際映畵祭 ‘Oscar’라 불리는 ‘Academy Award’에서 ‘Best Picture’ 최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4개 부분의 상을 차지하며 ‘Oscar’ 92년 歷史上 外國語 영화로는 처음이라는 금자탑을 이루었습니다. 대단한 變化와 發展이라는 생각에 Korean으로서 自負心을 가집니다.

이 映畵에서 눈여겨 주목하는 하는 점은 반 地下 집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한 家族의 모습입니다. 卒業狀을 위조해서 富者 집에 家庭敎師가 되고, 자신의 누이를 미술선생으로 취업시키고, 運轉技士를 모함해서 내쫓고 아버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아버지와 아들딸이 묘사를 꾸며 家政婦를 내치고 어머니가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黃金萬能시대의 倫理的 가치와 時代相과 陽極화의 社會相을 잘 보여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조금은 부끄럽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았는데, 40년 다른 文化的 공간의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공간의 차이는 施賞式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봉 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에서 民族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다’는 말이 자신의 영화인생에 함께 했다고 하면서 그 말을 저술한 경쟁자인 老 監督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배려와 존경 그리고 겸손, 우리 민족의 얼속에 흐르고 있는 倫理的 價値가 아닌 가합니다. 생소하게 변해버린 한 시대의 사회상을 그려낸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잊고 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빈곤묘사 文學으로는 世界 최고라는 우리의 古典 ‘興夫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형 놀부네 집으로 양식을 얻으러 갔다가 양식은커녕 걷지도 못하게 얻어맞고 네발로 기어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동구 밖에서 흥부의 마누라가 흥부의 빳빳한 마른 볼기짝에 몽둥이 맞은 자리가 구렁이 감기듯 한 것을 보고 이렇게 울먹입니다.

‘몹쓸 레라, 몹쓸 레라, 시아주비 몹쓸 레라, 내 설마 악을 쓰면 불쌍한 우리 가장 못 먹이고 못 입힐까, 나 오늘부터 벗어젖히고 탁문군의 본을 받아 술장사라도 해야겠소.’
흥부 마누라 술 판다는 소리에 흥부전을 통틀어 가장 큰소리로 외칩니다. ‘여보, 그게 웬 말이오’를 다섯 번 외치고, ‘죽으면 그저 죽지, 자네 시켜 술 팔게 하겠나. 두 번 다시 그 말에 입내지 마소.’를 다시 다섯 번 외칩니다.

그 時代의 道德的 觀念과 倫理的 價値觀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時代, 우리들이 잊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얼속에 흐르고 있는 文化 藝術的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반 지하를 벗어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道德的 觀念과 倫理的 가치관을 헤아릴 수 있는 영화가 ‘기생충’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敎會에 모여드는 많은 성도들 가운데 예수를 좀 저 높아지려는 도구로, 좀 더 가지려는 도구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목사가 된 목사, 家門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목사가 된 목사, 집안 창고에 재물을 쌓아두고자 목사가 된 목사, 그래서 교회 안에서 기독교 倫理的 가치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時代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와 관련된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일 신문과 방송이 오르내리고 기독교를 빙자한 사이비 종교의 문제, 세속주의에 편승한 교회의 추한 모습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데 이러한 때에 우리 믿는 성도가 승리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세가 꿈에도 그리던 열조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120년의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領導者 모세를 잃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너머의 가나안 땅의 새로운 文明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에 쌓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하여 그 땅을 점령하고 승리할 길을 제시해 주셨는데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6절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승리를 확신하고 담대히 용기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우리는 그들의 밥이다”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 부정적 보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 떨면서 不平不滿을 하며 모세를 원망합니다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능히 삼키리라‘는 능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과 가나안은 비교할 수 없지요, 광야에서 떠돌이로 헤매던 烏合之卒과 이미 화려한 文明를 이루고 있는 가나안과 비교는 무리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의 위력, 홍해를 가른 모새의 기도, 그리고 40년 동안 수없이 행한 하나님의 기적 등을 기억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언약궤를 앞세우고 요단강을 건넜고 難攻不落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을 점령하는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요즈음 한국행 항공기들이 運航을 취소하면서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戰爭이 난 것도 아니고 天災地變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온 人類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구나 생각해 봅니다. 사단의 세력 앞에 무기력하고, 세력의 권력 앞에 비겁하고, 물질의 위력 앞에 무너지며 덜덜 떠는 모습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지속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율법을 지키고 묵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7-8절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묵상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성도들이 날마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단강을 넘기에 수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말씀을 묵상하며 전쟁이 임했던 여호수아는 승리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化粧室이 밖에 있었습니다. 대개 大門 옆에 있었지요. 저녁노을이 지면 무서워 혼자는 化粧室에 못 갔습니다. 아주 아이 때는 엄마 손잡고 조금 자라서는 누이 손을 잡고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못 미더워 엄마나 누이를 ‘밖에 있어’라고 소리쳐 부르곤 했습니다.

한번은 저녁예배를 드리는데 오줌이 마려워 견딜 수가 없어 뛰어나가 화장실로 갔습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오는데 방안에서 성경말씀을 읽는 소리가 들려 따라 했습니다. 너무나 편하게 볼일을 본 후로는 깊은 밤에도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짓누르던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능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행함입니다. 말씀대로 살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아시고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라고 하십니다.

본문5절과 9절에 반복해서 강조하는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는 언약입니다. 사실 가나안은 軍事的으로나 經濟的으로나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이런 가나안 족속과 전쟁해야 하는 여호수아도 두렵고 떨리고 승리할 수 있을까 라는 否定的인 생각이 들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임마누엘의 확신으로 전쟁에 임하여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임종을 앞둔 어느 권사님의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머니와 할머니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합니다. 권사님은 수천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한 삶을 살았고, 권사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권사님이 남을 비판하거나 불친절한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직 권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삶을 의탁하고 흔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이처럼 놀라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건 훈련에 있었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매일같이 시간을 정하여 그 시간을 기도와 말씀과 예배의 시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삶의 최우선을 경건의 시간에 두었기 때문에 권사님은 어떠한 중대사가 터져도 경건의 시간만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였고,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거동하기가 불편해졌을 때 자녀들이 모시겠다고 여러 번 요구했으나. 아직 기도할 수 있고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동안은 혼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입에서 나오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삶의 자세에 있는 것입니다. 양과 사자가 두 편이 되어 싸웠습니다. 양의 군대 지도자는 사자요. 사자편의 군대 지도자는 양이었습니다. 승패는 어느 쪽일까요? 사자가 인도하는 양의 군대가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의 능력이 승패를 결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이 시간 이후부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행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No Response to “승리하는 길”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