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By 담임목사 on September 29, 2019

본문: 시편1편1-6절
제목: 시냇가에 심은 나무

冬將軍이 물러가고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움틀 때부터 그립던 햇과일 맛이 포도와 밤을 먹으며 싱그러운 맛에 더욱 풍요로움을 느껴집니다. 이 풍요로운 가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생활 또한 풍성하고 한없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참된 풍요로움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秋收의 계절에 어떤 열매를 수확하느냐는 봄에 어떤 씨앗을 어디에 어떻게 뿌리고 가꾸었나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 시편1편은 시편 전체의 序詩로 믿는 성도가 신앙에 근거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늘의 복을 입는 복 있는 사람을 한 마디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全知全能하시고 創造主 되시는 하나님께 복 받아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을 하늘을 나는 독수리나 바위를 박차고 뛰어오르는 사자나 호랑이로 비유하지 않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비유를 했을까를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람은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시골에 가면 큰 나무나 이상하거나 큰 바위에 五色 깃발을 걸어 놓고 그 앞에 서서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을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에 의존하여 이루려는 心理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영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의식이나 의지가 없는 미물과도 다릅니다. 우리가 영원을 사모하기는 하지만 결코 스스로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창조주이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영원과 절대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사실을 생생히 드러내고자 복 있는 사람을 의존성 강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내려야 비바람과 시냇물에 뽑혀 나가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땅속이 깊이 내리 못하면 열매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뿌리를 깊이 내려 풍토와 토양 그리고 햇빛과 바람 등 기후에 전적으로 의존할 때 나무는 나무로서의 풍성한 생명력을 얻어 열매를 맺으며 나무로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詩人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의존성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가큼 산책을 하는 길가로 강이라고 하기 에는 조금 작고 냇가라고 하기 에는 조금 큰, 河川이 흐릅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있지만 河川에 물이 마르면 이내 주위의 모든 생명들이 힘을 잃고 맙니다. 사시사철 흘러내리는 하천이 두말할 나위 없이 주위 모든 생명체의 원천이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말에서 ‘시냇가’는 나무인 우리 인간에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형상화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주님께서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란 말씀으로 주님 안 생명이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23편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백한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만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左右를 살필 수 없어 목자를 놓치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만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계시로 인도하시고 지혜로운 섭리로 우리 인생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3. 평안과 변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본문1-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하나님 안에 사는 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섭리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룰 때 평안과 변영이 보장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31장12절에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이란 우리 믿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란 이 축복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 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저로 영원토록 지극히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시21:6)라고 고백했습니다.

예레미야32장40절에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떠나지 않게 한다.”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나무를 심으셨나요? 이 시간 스스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좌절감에 깊이 빠진 사람이 담임 목사를 찾아가 신앙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고 부모님께 받은 상속 재산도 없고 몸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저는 항상 열등의식과 좌절감, 자학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천한 저에게 무슨 복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목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미국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노신사 한 사람이 접수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보시오, 이 호텔에서 제일 값이 싼 방을 안내해주시오.” 그런데 접수원이 이 노인을 보는 순간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대 유명한 거부 록펠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록펠러 씨가 아니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접수원은 “아니, 당신의 아들은 우리 호텔에 오면 언제나 제일 비싼 방을 구하는데 어떻게 당신은 제일 싼 방을 구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록펠러는 안경 너머로 접수원을 바라보더니만 “내 아들에겐 나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다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목사님은 “형제님은 자신을 비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당신 아버지가 얼마나 부자인줄 아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아니, 우리 아버지가 부자라고요.”하며 놀랐습니다. 형제님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형제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네,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부요하시고 존귀하신 분이십니까. 형제님은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냇가에 심은 나무’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우리 믿는 성도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 시냇가에 나무를 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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