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당하는 자의 위로

By 담임목사 on August 5, 2018

본문: 야보고서1장2-8절

제목: 시험받는 자의 위로

야고보서를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를 공동서신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특정한 개인이나 교회가 아닌 일반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이라는 데 있습니다. 학자들은 ‘일반 서신’이나 ‘교회 서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중 베드로전서와 요한일서는 일찍이 정경 성을 인정받았지만 나머지 다섯 서신은 A. D 397년 제3차 ‘카르타고 회의’에서였습니다.

야고보서의 특징은 기독교를 실천적인 종교로 제시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신앙이 단순한 이론이나 지적인 것이 아닌 실천이며 행함에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아고보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대한 최상의 주석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첫 부분에 시험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 당시 모든 교회들이 시험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Turkey, Cappadocia에 ‘카이막흐르’라는 마치 개미집 같은 지하 도시가 있습니다. 동영상으로 보면서 불가사이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동굴 속에서 5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을까? 기독교인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파고 들어가 숨었던 곳입니다. 그 안에는 교회도 있고 신학교도 있고 주거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모습으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처럼 박해를 당하며 극심한 시험에 처해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격려와 교훈의 메시지를 서신을 통해서 보냈습니다. 그것은 이 시험을 통과한 믿음의 승리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교리적 이론을 습득하는데 있지 않고 오직 환난과 시험을 당할 때 더욱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야고보사도는 한 마디로 본문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고,

사도바울은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신실한 성도로 바로 서게 하고자함입니다.

  1. 시험은 인내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본문3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시험을 기쁘게 받아드립니다. 우리 믿는 자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허물과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 허물과 추한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모든 시험이 외부, 즉 환경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시험은 대부분 우리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스스로 견디지 못하면 결코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은 때로는 외부의 박해로 오기도 합니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하지만 참는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어느 부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제는 안 되겠어 일 년을 가르쳐도 아직까지 저 모양이니 얼마나 더 되풀이를 해야 할 수 있겠소 멍청이 같은 이’ 이에 아내가 대답합니다. ‘아니요. 지금까지 애써 가르친 온 노력이 아까워서 포기할 수 없으니 더 노력해 봅시다.’ 후 날 이 멍청이가 돈 벌어 주는 기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의 천부적인 능력보다는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이라는 책을 쓰 ‘기번’는 20년 동안 책을 썼고 ‘조지 벤트로트’는 26년 동안 미국의 역사책을 섰고, ‘하나님 나라’는 설교 집을 쓴 ‘비처’는 40년 동안에 걸쳐 썼고, ‘마커스 모턴’이라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16번 만에 주지사에 당선 되었습니다.

이처럼 항상 꾸준하게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기쁘게 여긴다는 것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시험에 들지 말게”라는 주기도문에 상충되는 것 같지만, 시험을 기쁘게 여기는 것이 시험에 들지 않는 길이요, 시험을 이기는 방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교훈과 근본적으로 부합되는 것입니다.

2. 시험은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하다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세월에 장사가 없다고들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지요. 본문에서 온전하다는 믿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의미입니다.

야고보사도는 성도는 오직 인내로만이 온전해 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인내를 모든 덕의 여왕이라는 말처럼 성도들의 인내란 높이 평가되는 미덕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도의 기본자세가 순종에 있으므로 인내가 없이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인내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였습니다. 자기 서재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종이에 가득 쓴 것을 루터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을 한참 들여다 본 루터는 기가 질렸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맥이 탁 풀렸습니다. 자기가 오래 전에 지은 죄를 낱낱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리기까지 했던 죄를 다 적은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마귀는 그 뒷면을 또 보여줍니다. 자세히 보았더니 요사이 지은 죄를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마귀는 비웃는 얼굴로 루터를 향해서 “이 기록이 모두 사실이냐”고 묻습니다. 루터는 “그렇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마귀는 루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런 더러운 녀석이 무슨 종교를 개혁해? 너나 좀 바로 살아! 너 이 죄 값을 어떻게 할래?” 이때 루터는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힘없이 앉아있는데 뒤에서 분명히 들리는 부드러운 음성이 있었습니다. “루터야, 네 모든 죄를 내 피로 다 씻었다. 너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다.” 이 음성을 듣는 순간 루터는 정신이 들었습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하는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새 힘을 얻어 크게 외치며 책상에 놓여있던 잉크병을 들어 벽에 던졌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누가 나를 정죄할 것이냐?” 그때 마귀는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중도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여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인데,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류 중에 완전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오랜 세월 던지는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성도들은 이 완전을 목표로 살아가야 합니다. 산상수훈에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의 원숙한 성품과 그 풍성한 생활이 달성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온전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인내, 즉 참은 것 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는 질문이 ‘얼마나 참아야 하나요.’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만큼 이라고 대답합니다. 십자가의 수치만큼, 십자가의 고통만큼 참아야 합니다.

3. 시험을 이길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본문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온전한 인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외에는 온전한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온전한 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너희도 온전하라.’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이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요 또한 온전한 하나님을 좇아가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인내할 수 있습니까? 온전한 지혜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학문적 지혜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며 또한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참 지혜를 말합니다. 이 지혜를 온전을 위해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이 지혜를 구해 일생동안 영화롭게 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시험이란 우리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일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재촉하여 이 계획, 저 계획을 세우게 합니다. 우리에게 웅장한 계획이 있고 많은 가능성이 있어질 때, 그것은 우리마음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여 망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아니라 이 세상에서 모든 시련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구하는 이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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