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군병

By 담임목사 on June 3, 2018

본문: 디모데후서2장3-4절

제목: 십자가 군병

地球상에서 가장 전쟁의 위기가 오랫동안 계속되는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 이유는 세계4대 종교의 성지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유혈사태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11c부터 14c까지 약361년 동안 이슬람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하여 Roma Catholic이 일으킨 십자군에 의한 십자군전쟁을 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와 문명의 충돌로 서양의 중세사에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전쟁이었는데 교황과 유럽영주들의 이권과 이해관계가 엉켜 전쟁의 목적인 성지탈환은 뒷전이고 전리품의 노획과 약탈로 전철되어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자마자 이슬람교도들을 무참하게 학살했고 그 결과 성지의 회복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본문에 사도바울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軍士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9장7절에“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고 했고, 고린도후서10장4절에는 “마귀는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고, 디모데전서1장18절에는 “아들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 믿는 성도들은 군사는 군사로되 창이나 검이나 총으로 무장하고 성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사람을 죽이는 군사가 아니라 사탄과 싸우는 신령한 군사로 성령을 무기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좋은 군사요 선한 싸움을 싸우는 군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좋은 군사가 가져야할 태도가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고난을 견디는 군사입니다.

디모데후서4장5절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 하라.”고 했습니다. 군사가 된다는 것은 육적이나 영적으로 고난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전재로 합니다. ‘이등병 편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 중에 ‘집 떠나와 열차타고’ ‘풀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좀 좋아졌지만 바뀐 환경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훈련으로 지킨 육신, 잠이 모자라고 배가 고프고 그래서 멀리 도망치고 싶고, 탈출하고 싶고, 심지어 죽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끝까지 견뎌야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군인은 자신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 민족을 위하여 고난을 받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의 군사로써 예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의 군사로써 고난을 견디고 참으라고 권면하면서 좋은 군사가 되려면 영적 훈련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여 어떻게 해야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으면 사업도 잘 되고, 병도 안 걸리고 만사형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합지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준비 안 된 군인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힘든 훈련을 받은 군사라야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성도들도 고난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그 고난을 견디어 내야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란과 역경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욥은 자식과 재산과 건강을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지만 그는 신앙의 연단 과정에서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러운 연단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옙6:12)고 했습니다.

2. 사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본문4절에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을 떠나 군 입대를 하게 되면 자기 생활이 없습니다. 오직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습니다. 집에 두고 온 먹다 남은 떡이나 이런저런 문제를 걱정하거나 사생활에 연연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군사, 즉 십자가 군병들도 마차찬가지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의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면 가고 서라면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명령이라면 덥던지 춥던지 위험하던지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군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문지기 베드로가 보기에 좀 거시기 해서 문 닫기 전에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을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서성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하도 답답해서 불러 묻습니다. ‘아니 왜 안 들어오고 성가시게 하냐.’

성도가 대답을 합니다. 못 들어가는 이유가 두 개 있는데요. 하나는 내가 일평생 마누라 몰래 비자금을 만들어 그 동산 감나무 밑에 숨겨 두였는데 그것 어떻게 만들었는지 베드로 사도도 잘 아시지요? 다시 가서 다 쓰든지 아니면 용돈이 궁해서 자식들 눈치 보는 마누라라도 주고 와야 해서요.

그리고 또 하나는 마누라 몰래 내 친구 있잖아요. 철수, 돈 빌려 준 것이 있는데 가서 받아오던지 아니면 마누라에게 이야기해서 받으라고 해야지요? 이에 베드로사도가 사정은 잘 알겠는데 5분 후면 천국 문을 닫고 나도 들어가야 하는데 알아서 결정을 하라고 합니다. 망설이다 천국 문이 닫혔습니다. 그곳을 신학적으로 연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하기 쉬운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하나님의 신령한 군사로써 복음 사역에만 전념하고 사탄과 싸우는 일에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데, 육에 속한 전투에 전념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영육 간에 신령한 군사로써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왜 육과 영의 싸움 사이에 왔다 갔다 합니까? 바로 예수의 군사로써 성령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군사는 ‘생활을 위한 일들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만 사로잡혀있어야 합니다. 직분에 상관없이 우리 모든 성도들은 생활에 얽매어 주님의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2. 부른 이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1장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라 하나님께 좋게 하라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국가의 군인은 국가가 모든 생활비를 지불하고 대신 군인은 국가에 헌신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수의 군사로 모집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모집한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수님께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예수님을 기쁘시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어느 무명 병사의 감사기도입니다. 주님, 저는 출세를 위해 당신께 힘을 구했으나 당신은 순종을 배우도록 저에게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위대한 일을 하고자 건강을 원했으나 당신은 그보다 선한 일을 하도록 저에게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행복을 위해 부귀를 청했으나 당신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저에게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만민으로부터 우러러 존경받는 자가 되려 명예를 구했으나 당신은 저를 비참하게 하시어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삶의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원했으나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삶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비록 제가 당신께 기도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주시었으니 주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부잣집 노인이 말을 타고 행차하다가 앞길에서 거지와 같이 보이는 사람이 기뻐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돈이 많아도 춤출 일이 없는데 거지는 도대체 무엇이 기뻐서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가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 거지는 대답하기를 “나는 기뻐서 춤을 추는 이유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기쁘지 않을 수 없고 둘째, 나는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불구자이나 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구자가 많고요 셋째, 세상에서는 날 부러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나 나는 죽으면 하나님 품안에 있을 것을 생각해서 너무 기뻐 춤을 춥니다.” 하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소집한 군병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신자를 군인으로 비유한 것은 신자의 삶이 마치 군인의 삶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절름발이 불구자 거지도 군사로써 부름 받는 군병으로써의 삶이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사람은 우리 구속하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삶을 우리 믿는 성도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부응하여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좋은 군사로써 혼신의 힘을 다하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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