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는 헌신

By 담임목사 on July 21, 2019

본문: 요한복음12장1-8절
제목: 아낌없는 헌신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 하고, 가장 존경 받는 이름 하면 “어머니”이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은 “엄 – 마”라는데 異見이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훌륭한 헌신이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이기 때문이 아닌 가합니다.

저도 고희를 눈앞에 바라보는 나이에 ‘선 너머’의 가파른 언덕마루에 서서 가슴에 새겨진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고 애달픕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라는 ‘정채봉’詩人의 詩를 읽으며 고금古今 시인의 가슴에 새겨진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 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내 가슴 속 깊이 감추어진 心情 또한 이와 같으리라 울먹이며 몇 번씩 時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런대 성경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요3:16)”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의 희생과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그리고 이웃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치시고 성경 가운데 자신을 희생하여 주님을 섬긴 여인들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는 그 대표적인 여인이 수넴여인과 본문에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입니다. 이 두 여인의 헌신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3절에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부은 나드는 삼백 데나리온이고 이것을 오늘 시세로 하자면 천사오백 달러쯤 되는 돈입니다.

당시 향유 나드는 富의 상징으로 보석과 재산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몸으로 이 정도의 귀한 것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는 것은 얼마나 예수님을 믿고 사랑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재산을 예수님께 다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26:1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우리 재물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우리는 아낌없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내 것인 줄 알고 움켜잡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Martin Luther’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중에 많은 것들을 소유했었으나 지금은 다 잃어버렸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수중에 맡긴 것은 여전히 내 소유로 남아 있다.” 서두에 말씀 드린 대로 인생 고희 문턱에 서서 내 소유로 남아 있는 것은 얼마큼일까? 헤아려 보니 두렵고 걱정이 앞섭니다.

동내에서 부자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 처음으로 자가용을 사 자랑삼아 큰길가로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러와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 속에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의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악을 쓰며 애원하며 매달리던 부자가 체념을 했는지 이렇게 탄식을 합니다.

“내가 써 버린 것은 무엇이고 내가 소유했던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얻었던 것은 무엇이고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내가 남에서 무엇을 베풀었고 또 무엇을 받았던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안에서 우리 재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를 깨닫고 우리 재물의 가장 안전한 창고인 하늘나라에 쌓아야 하겠습니다.

2. 이해타산을 가리지 않고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隔世之感을 느끼지만 처음 미국에 와서 교회에서 나간 야유예배에서 LA를 갈비를 보고 생각난 얼굴이 어린 시절 추억 속에 남아있는 동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고향방문에 갈비를 겹겹이 싸 감추어 가방에 넣어 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Give and Take’식 이해타산 없는 혈육의 정이 아닌 가 싶습니다.

구약성서 열왕기하48장8절 이하에 나오는 수넴 여인은 남편이 있는 여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위해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곳을 지날 때마다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헌신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무엇을 바라고 한 일이라 아니라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여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자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또한 창세기18장에 보면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사자들을 영접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아 대접을 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무엇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 대접하고자 하는 헌신적인 마음에 한 일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녀와 재물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무엇을 바라고 헌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소련의 심리학자 파블로프가 발견한 ‘조건반사’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종을 치고 난 후 개에게 밥을 주는 일을 반복했더니 나중에는 개가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린다는 이론입니다. 이론에서 종소리는 ‘조건’이고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은 ‘반사’입니다. 이 이야기를 역전시킨 우화가 있습니다.

잘 생긴 개가 거리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산책을 나와 있는 친구 개를 만나는데 안부를 묻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혈색이 좋은가?” 잘 생긴 개가 대답을 합니다. “응, 나는 요즘 먹이를 얻는 방법을 터득했거든” 그 개가 터득한 먹이를 얻는 방법은 역시 조건반사 이론을 실천에 적용한 것입니다.

즉 파블로프의 연구소 앞에 가서 멍멍 짖는다는 것입니다. 개가 먼저 문 앞에 가서 멍멍 짖으면 연구원이 문을 열고 나와서 종을 땡땡 치고는 먹이를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개가 멍멍 짖는다는 것이 ‘조건’이 되고 먹이를 갖다 놓는 것이 ‘반사’가 되는 것입니다. 조건 반사 시험을 반복하다 보니 연구원에 조건반사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건 반사적인 헌신 즉, 이익을 바라는 헌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아무런 사심 없이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금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 우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굳센 믿음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켰지만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냄 여인과 본문의 마리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었기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헌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헌신 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냄 여인과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헌신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체면치레나 하며 억지로 교회봉사와 헌신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나의 것으로 착각하고 항상 움켜쥐고 살아가지는 않는가를 스스로 살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릴 준비와 각오를 하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영생과 천국을 약속 받았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하나님을 기만하고 속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올바르게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드릴 때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워너메이커’라는 대 기업 회장에게 한 성도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한 그룹의 회장으로서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많이 하고 있는데 어떻게 사천 명이나 되는 교인들과 함께 교회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까?” 회장이 대답을 합니다. “아,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나의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들은 단지 하찮은 일거리에 불과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나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확실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이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나는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교회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르밧과부는 아들과 함께 한 끼 먹으면 없어질 양식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위해 믿음으로 드렸을 때 기근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들도 항상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드릴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 더 많은 축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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