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정

By 담임목사 on May 19, 2019

본문: 창세기2장18-25절
제목: 아름다운 가정

싱그럽고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산책로를 뒤덮고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펴는 신록의 계절 五月입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에 결실의 기쁨과 용기를 갖게 하는 희망의 달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인류 최초의 가정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정입니다. 이 가정들이 모여 이웃을 이루고 이웃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가 모여 국가를 형성합니다. 때문에 가정은 이 사회의 중심이고 신성한 보금자리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정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축복 받는 가정으로 가꾸어 갈 수 있을까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집착하여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믿음은 보이지 않은 것에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기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자신의 지성이나 이성적인 지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쳐서 복종하는 행위입니다.

구약성서 창세기6장5절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했고, 9절에는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방주를 지어 인류를 보존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며 저작거리에 나가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것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노아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의 일곱 사람밖에는 없었습니다.

일곱 사람은 노아의 아내와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가족만 심판을 면하고 새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노아의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알렌 레드패스’는 “어떤 사람이든 자기 신앙의 실재가 가장 엄격한 시험을 받는 곳은 바로 그의 가정이다.”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 가정이라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무엇을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는 우리의 생명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한 곳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주일날 교회 가는 골목에서 듣던 노래가 있습니다. “예배당에 갖더니 눈 감으라 하더니 돈 내놓아라하더라.”

우리가 살던 골목 안에서 예수를 믿던 집은 우리 집 하나였는데, 후에는 믿는 골목이 되었습니다. 골목을 벗어나면 말간이라는 집이 있었습니다. 마차들이 모이는 말수래 주차장 같은 곳이었는데 그 집은 끝까지 예수를 안 믿었습니다. 동내에서 그 집이 가장 부자였습니다.

그 말집 아이들은 늘 좋은 옷을 입고 매끼마다 흰쌀밥에 고기 국을 먹어 동내 아이들의 부러움 사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후에 들으니까 소고기 국이 말고기 국이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아무튼 부자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서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군대를 제대하고 병원에 근무하는 어느 날 아버님이 한 청년과 함께 오셨습니다. 사연인즉 그 말간 집 아들인데 아버지가 객지를 떠돌다가 병에 들어 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입원비를 지불하지 못해 장사를 못 지내고 있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병원 수위실에 아버지 존함을 말했더니 우리 집을 알려주어 왔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서무과와 상의해서 치료비를 감면받아 장례를 치루고 사과 한 봉지를 들고 찾아와 눈물로 감사를 하며 왜 우리만 예수를 안 믿었는지 부모를 원망하며 자신은 오늘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니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실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쪽 가정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2. 사랑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신약성서 골로새서3장18-21절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로서 가정의 모습입니다.

신약 성경에 소개하는 성숙한 가정들 가운데 두드러진 가정은 빌레몬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장으로 아주 짤막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띄울 때, 그를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몬1:1)라고 지칭하면서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몬1:2)라고 문안을 합니다.

빌레몬서1:4-7절에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 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빌레몬의 삶 가운데 나타나 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한 다감한 아버지로서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했던 빌레몬의 모범은 그의 온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빌레몬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는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 주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태초에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원리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 순종하고, 다시 말하면 피차 서로 죽기까지 사랑하며, 죽기까지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나를 있게 한 창조자의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은 남을 존중하고, 덕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법보다는 도덕과 윤리에, 그 보다는 더욱 더 선한 양심으로 나의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문화적 사명을 다 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들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문화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은 축복의 창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관리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연 속에는 질서의 원리가 있습니다.

다스릴 것은 다스리고 지배할 것은 지배하고 정복할 것은 정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되지 못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먼저 물질관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요 청지기입니다. 재물을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 또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야 합니다.

新婚夫婦가 신혼집을 장만하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오래지 않아 기운이 빠지고 걱정이 밀러옵니다. 예산보다 집값이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입니다. 좀 더 알아보려고 자전거를 빌려 이 동내 저 동내를 하루 종일 둘러보았습니다. 경치가 아주 좋은 부자동내에 들어서자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저런 집에 살아보나 싶어 한 숨만 나옵니다. 그러다가 정말 아름다운 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넓은 정원에 서양식과 한옥이 겹치는 건축양식에 수영장까지 있는 집이였습니다. 부러움에 대문사이로 집안을 살피는데 갑자기 집안에서 서로 내뱉는 거칠고 상스런 말이 세어 나옵니다.

新婚夫婦는 마음 상해서 “꿈같은 집”에 대한 바람이 한 번에 무너지고 조용히 그 집을 떠나 아래 동내 허름한 초가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솔길 넘어 까지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싸리문 사이로 드려다 보니 앞마당 평상위에 오손도손 둘려 앉아 저녁을 먹은 온 식구의 얼굴은 빛이 나도록 행복해 보입니다.

그래서 新婚夫婦는 또 다시 아름다운 꿈을 꾸며 집을 구하려 나섭니다. ‘P.J. 헌’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정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어디에 살더라도 행복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전에 온 천지만물이 모두 다 인간에게 순종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된 인간은 선하고 아름다운 합리적 사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이후 타락한 인간은 수고와 슬픔의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 주었으며 그는 우리에게 쉼과 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 축복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축원 드립니다.

No Response to “아름다운 가정”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