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의 삶

By 담임목사 on August 30, 2020

본문: 요한계시록22장18-21절
제목: 아멘의 삶

基督敎에 있어 십자가는 過去이고, 부활은 未來이고, 아멘은 現在라고 부르며 십자가의 宗敎요 부활의 宗敎요 아멘의 宗敎라고들 합니다. 설교 말씀 중에 십자가와 부활은 수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아멘은 우리가 설교말씀을 듣고 감사하거나 감격스러울 때 하거나 기도가 끝난 후에 흔하게 무심코 하는 말입니다.

때문에 아멘은 성도들이 믿음 깊어하면서 많이 복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멘은 예배용어의 하나로 히브리동사 ‘아만’에서 유래된 말로 ‘의지한다, 의뢰한다는 의미로 ’참으로, 진실하다는 뜻으로 동의한다는 의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엄숙하게 긍정한다는 말인데 아멘의 삶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정식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이 악해진다고들 합니다. 때문에 악해지지 않으면 生存競爭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聖經은 믿는 자는 가난하고 역경에 처하면 처할수록 진실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우리가 처한 세상이나 교회는 어디서도 진실이나 정직을 찾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밀림에 힘이 센 사자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늑대와 고양이 그리고 개와 여우를 불러다 잡은 고기를 다섯 짐승이 먹을 수 있도록 갈라놓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늑대가 나와서 갈랐습니다. 사자는 갈라둔 고기조각을 가만히 보더니 괜한 트집을 잡아서는 늑대를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나누었습니다. 물론 늑대는 없으니까 네 등분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나누어진 고기를 보더니 느닷없이 너는 왜 나와 닮았느냐고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개의 차례입니다. 물론 늑대와 고양이가 없으니 3등분했습니다. 괜히 화가 난 사자는 너는 왜 사람들에게 살살거리느냐며 재수가 없다고 잡아 먹어버립니다.

맨 나중까지 남은 여우는 이것을 보고는 자기 차례가 오자 많은 양의 고기를 듬뿍 갈라 사자 앞에 놓아두고 자기에게는 아주 조그마한 고깃덩어리를 놓아 이등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사자님,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때서야 사자는 기분이 좋아서 여우를 칭찬하고는 “그래, 누가 이런 것을 가르치더냐?” 하고 묻자 여우는 “예, 제 앞에 죽은 세 친구의 죽음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정직하면 죽는다는 것, 살면서 배우고 요령을 알아 생명을 연장하는 교수법, 그리하여 거짓을 선택하더라도 희생되지 않는 비 진리를 동물들을 통하여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얼마나 많이 이 거짓 속에 배워온 것들로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성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것은 진리뿐이라 했고, 진리를 찾기 시작할 때 마침내 인생은 새로운 출발점이라 했고, 성도들에게 가장 큰 무기는 진실이라 했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이 진실이다’고 했습니다.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성을 잘 묘사한 말들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로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는 말씀처럼 공의와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신뢰와 순종하는 삶입니다.

순종은 상대를 신뢰할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를 믿지 못한다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개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사람이 훈련시키던 개에게 물렸다고 합니다. 동물과 인간과의 사이에도 신뢰라는 것이 있을 때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동물이 인간을 믿고 따라 오는 법입니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사이에 어떠하겠습니다. 신뢰가 없이는 따를 수 없고 순종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신뢰가 없는 관계는 위선에 불과합니다. 東西古今를 통틀어 해결되지 않는 관계가 姑婦간의 갈등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신뢰가 구축되어 진실한 순종이 이루어지려면 數十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저의 형제 중에 막내 동생만 빼고 모두들 며느리들을 보았습니다. 五十 줄에서 二十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며느리가 있습니다. 대부분 姑婦 사이가 좋지 않아 가큼 가서도 만나지 못하고 오는 며느리도 있습니다. 옆에서 훈수드는 입장에서 보면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같았습니다.

로마서10장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받아들인 주님에게 나를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고 신뢰하여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요15:16)말씀하셨고, 이사야4장1절에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구약성서 잠언16장3절에는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고, 베드로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벼려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했습니다. ‘George Muller’는 ‘다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람도 가정도 저기의 능력도 신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여 맡길 때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참으며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도 매사에 아멘 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한 고비 지나면 또 한 고비가 앞을 가로막고 숨 돌리만 하면 사건이 터지고 그래서 실망하고 근심과 걱정이 끝날 날이 없습니다.

아멘은 우리기 무슨 일을 만나든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소망 중에 기뻐하며 가도 중에 기다릴 때만이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여 믿고 기도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우리의 기도를 들르시는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20) 라고 하였습니다. 天地가 변하여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구하며,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골3:2) 했고, 또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했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난과 재앙은 잠시 후면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우리 인생 또한 아침이슬과 같아서 잠시 잠간이면 지나가고 끝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을 기다리며 바라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실하고 정직한 생활, 순종하는 생활로 날마다 아멘이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원을 사모ㅗ하여 기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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