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하는 믿음

By 담임목사 on December 31, 2017

본문: 요한계시록22장18-21절

제목: 아멘 하는 믿음

丁酉 年 닭의 해, 마지막 날 주일설교를 드리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多事多難했던 한 해의 모습이 주옥같이 뇌리를 스칩니다. 기쁜 날보다는 슬픈 날이 많았고, 힘들고 고단하고 근심과 걱정스러움으로 가득했던 날들이었고, 그래서 때로는 그냥 그대로 멈추고도 싶고 때로는 길을 떠나고픈 마음을 달래며 지내온 세월이었습니다.

꽃 피는 春三月로부터 嚴冬雪寒 눈꽃이 내릴 때까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새벽을 깨웠지만 마음의 평안과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고단함만 더 해가는 今年 끝자락 마지막 새벽에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마는 그 다음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내가 힘들고 고단하고 슬픈 날들이었던 이유는 스스로의 마음이 온유하지 못하고, 행동이 겸손하지 못하고, 멍에를 메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걱정스러움에 두려움이 더 해가는 것은 오늘이 ‘인생의 끝자락’ 이라면, 생각하니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본문은 성경 맨 끝자락에 성령이 사도요한을 통해서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인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말씀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 자신 있게 말하는 자들은 자신의 생을 통해서 마음이 온유하고, 행동이 겸손하고, 자신의 멍에를 잘 멘 성도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마지막이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축복된 자리입니다.

‘아멘’이란 히브리어 ‘아만’에서 유래된 말로 진리, 확인, 신뢰, 긍정, 소망의 뜻을 가진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하게 요구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한 해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까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진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고 참됨.’입니다. 거짓이 없고 참됨 마음을 가져야만 온유할 수 있습니다. 온유는 ‘나의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이고 반대말은 분노입니다. 분노는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 또는 그렇게 내는 성.’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분노, 즉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온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온유한 사람은 분노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화가 폭발하면 인간관계는 파괴되고 단절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은 것은 아닙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됩니다. ‘아멘’ 하는 우리 믿는 성도들은 분노를 극복해야합니다.

왜 화가 납니까?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낄 때입니다. 그러기에 분노를 극복하고 온유해지는 방법은 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권만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모든 권리마저 하나님께 양도하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와 온유 둘 다를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본적인 성품으로 분노를 가지든지, 온유를 가지든지 둘 중 하나만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두 마음을 가지고는 결코 정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바람에 나는 갈대와 같다’는 말처럼 우리의 마음이 간사해서 하루 추천번씩 두 마음을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하루에도 추천번씩 자신을 처서 복종시킨다고 고백을 합니다. 일란 쌍둥이 자매가 겉모습은 꼭 같은데 성격이 다릅니다. 하나는 아주 소심하고 하나는 너무 활발합니다. 소심한 아이는 늘 양보만 합니다. 그래서 좋은 것은 늘 활발한 아이가 독차지 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온유하고 정직하다는 것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권리를 하나님께 양도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자는 온유한 자입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는 나의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입니다. 온유한 자는 나의 책임을 다하되 기도하는 성도입니다.

바로 권리양도의 모범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빌립보서2장6-8절 이하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어느 믿음이 좋은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며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며 자신의 생활을 모두 하나님의 뜻과 지혜에 내어 맡기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이 깊이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들어옵니다. 작년 가룸 때문에 농사를 망친 기억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지 않았기에 비가 오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의심이 생기자 분노가 치밀고 적개심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내가 정말 얼마나 열심히 일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어째서 하늘 문을 열고 비를 내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 믿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향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려도 뭉게구름만 둥실둥실 떠갈 뿐 응답이 없습니다.

속으로 믿을 사람 없구먼! 중얼거리며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늘 하던 대로 성경을 펴고 히브리서를 읽어 나가다가 뭔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리고 그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라고 깨닫고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새로운 믿음과 희망을 안고 미래를 꿈꾸며 밭으로 향합니다.

로마서10장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받아들인 예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며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워나니”라고 했고, 잠언16장3절에는 “너희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고, 베드로전서5장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George Muller는 ‘다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람도, 가정도, 자기의 능력도 신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길 때가 만사가 형통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믿고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 날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소망하여 기다려야 합니다.

‘아멘’하는 믿음의 외침은 실망하여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 중에 기다는 삶입니다. Paul Hill는 ‘소망은 우리에게 장차 큰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리라는 사실을 확신 시켜 준다. 소망은 우리에게 그 기쁨과 행목의 실상을 드러내준다.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기다리게 하며 그것들을 위하여 고난을 견뎌 내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는 다고 큰소리치면서도 구하지 않고, 찾지도 않고, 두드리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고달픕니다.

왜 우리가 구하지 못하고 차지 못하고 두드리지 못할까요? 바로 그것은 요행이나 바라며 富貴榮華만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2) 했습니다.

구약성서 신명기에 보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살아야할 땅을 보여 주시고 신명기34장4절에 보면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했고,

신명기32장51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 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고 했습니다. 홍해를 육지처럼 넘어 가데스 므리바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했던 곳입니다.

이때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나게 했습니다. 모세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못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것만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했습니다.

모세가 죽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難攻不落이라는 여리고 성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고 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그렇게 하니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에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참고 하나님의 때를 바라며 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이와 같이 진실하게 정직이 행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순종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외치는 자들이 되셔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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