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By 담임목사 on February 25, 2018

본문: 전도서3장1-15절

제목: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우리는 Global 시대에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판이하게 다른 변화를 끊임없이 지나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서있는 위치가 바뀌면서 차고기우는 달과 같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변화로 인하여 형통할 때 편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안해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통찰력 있는 지혜로운 전도자 솔로몬은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전2:24) 이 말씀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갖가지 교만과 소망으로 고개를 쳐들지 말고 두려움으로 낙남하지도 말며 오로지 침착하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사는 현실 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사건들 지나치면서 그 현장에 오묘한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면서, 모든 사건들이 인간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宇宙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자가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에 따라 때를 맞추어 진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천하에 범사기 기한이 있고 그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우연인 것처럼 보이거나 예기치 못한 돌발적인 사고 생각하지만, 전도자는 이 모든 사건들이 결코 우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개입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고 그 기한이 차기까지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밀물과 썰물의 만조 현상을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까?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변화, 해가 뜨고 지는 변화, 때에 따라 변하는 달의 모양. 그 무엇 하나 사람의 능력으로 임의 조정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전도자의 권면 위에 서면 불행한 일에 낙남하지 않고 형통한 일에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아래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Timing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는 뜻이고,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William Shakespeare는 “시간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속도로 가고 있다.”고 했고, 성경에는 “세월을 아끼라.”(엡 5:16)고 말씀했고, 본문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2-8절 천하의 범사가 때가 있음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죽일 때와 치료할 때’ ‘헐 때와 세울 때’ ‘울 때와 웃을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찾을 때와 잃을 때’ ‘지킬 때와 버릴 때’ ‘찢을 때와 꿰맬 때’ ‘잠잠할 때와 말할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진행할 때와 평화로울 때’ 이때를 잘못 맞추면 세상만사 꼬이고 괴롭고 두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살아가면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를 통해서 성숙해 지는 것은 그 변화 속에서 진리를 깊이 깨달아 깨우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고 하셨고, 본문의 전도자는 진리를 하나님의 계획으로 알고 깨닫고 거듭해서 ‘내가 알았도다.’라고 했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를 본문을 중심 찾아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가장 좋은 것을 알았습니다.

역사적으로 前無後無(전무후무)하게 축복과 변영을 누린 전도자가 인생을 살면서 더 좋은 것이 없다고 느낄 만한 좋은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본문12절에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라고 했습니다.

첫째, 전도자는 사는 동안 기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분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 뜻에 따라 묵묵히 순종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시대의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기뻐한다는 것은 단지 기분이 좋아 웃은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기쁨은 주안에서 성령의 위로로 말미암은 온전한 기쁨입니다. 빌립보서4장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는데 이 기쁨은 주 안에서 확실한 소망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어느 주일날 설교 제목이 ‘항상 기뻐하라’였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아 크게 감동한 어느 집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다가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가 집에 달려갔습니다. 주일설교에 얼마나 은혜를 받았던지 차안에서 ‘항상 기뻐해야지’를 속으로 계속 되새기면서 갔습니다. 喪家집에 들어서서 온 식구가 곡을 하며 슬퍼하는데 혼자서 싱글벙글 웃고 다닙니다.

보다 못한 妻男이 가라며 발로 차 버립니다. 쫓겨나와 집으로 가는데 친구 아들이 결혼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결혼식장으로 달려가 이번에는 웃으면 안 되지 잔즉 찌푸리고 곡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푼수 없다고 하고 눈치 없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전도자는 사람이 자기 분수를 알고 하나님 은혜 안에서 기뻐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선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지배층의 덕목으로, 가진 자가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에 따른 의무를 다해야한다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가진 자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가진 자의 덕목입니다. 전도자는 선을 행하는 것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커다란 행복감을 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村사람이 상경해서 성공을 했습니다. 큰 집도 장만하고 자동차도 굴리고 그런데 어느 추석에 금의화향, 고향 집에 아들딸 마누라 비단 옷 입혀 들어섭니다. 온 一家親戚이 맨 발로 뛰어 나와 환경을 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여 돈지갑 꺼내들고 이 사람 저사람 집어 주고 준비해간 부모님 선물 드리고 집안 어르신들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용돈도 넉넉히 드리니 온 동내 소문이 자자합니다.

정신없이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 알 수 없이 허전하고 찜찜합니다. 왜일까? 깊이 생각해 보니 온통 마음이 자기 성공을 자랑만 한 것 같습니다. 雪上加霜 무리해서 산 집과 자동차 월부금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 같은 실수를 수없이 하며 살아왔습니다. 뭘 많이 베푼 것 같은데 기분이 늘 찜찜합니다. 자랑과 과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 착한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른 손이 한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선을 행하는 것 자체가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어야 아름다운 일이 됩니다.

2. 하나님의 선물에 대하여 알았습니다.

전도자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고 무엇을 원하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부귀와 공명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선물로 누릴 줄 아는 지혜를 가졌습니다. 그는 첫째,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육신에 속한 것을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창조동산에서 인간에게 창조된 모든 것을 다스리고 누릴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이 분명하게 육신에 속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즐거움에 하나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명심해야할 것은 사람이 오직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염려하는 것은 바람직한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이 땀 흐림으로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사람이 누릴 가장 큰 축복을 땀 흘린 소산을 먹은 것이라고 합니다. 전도자는 땀 흘리는 것을 저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노동의 대가로 얻는 정직함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직한 땀을 흘림으로 얻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깨우쳐 줍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해야함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고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10:27)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전도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안 후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본문14절에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전도자는 이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가감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의 경외를 받으실 유일한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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