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결산

By 담임목사 on December 29, 2019

본문: 마태복음25장14-30절
제목: 영적인 결산

2019년 기해년 마지막 주일예배를 준비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를 되돌아보았습니다. 후회스럽고 아쉬움만 가득차고 넘쳤습니다. 이 때 책상 앞 창문에 뭔가 글자가 써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네 두려움이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그리고 성경 한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 구절은 바벨론 마지막 왕 벨사살의 큰 잔치 때, 그가 앉아 있던 왕궁의 정면 벽 위에 기록된 의문의 문자입니다.(단 5:25)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바르신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 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할 말씀이 ‘시대를 세어서’와 ‘저울에 달려서’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여 심판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평가와 심판’에 대하여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19절에 “오랜 후에 그 종의들의 주인이 돌아와 회계할세.”

연말이 되며 누구나 한해를 뒤돌아보며 결산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한 해를 저물어 보내면서 한해를 정리하고 회고하면서 한 가지 영적인 생활을 세어보고 스스로 심판하여 남은 것이 있는지 아니면 부족한지 신앙생활을 점검하여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 다짐하고자 합니다.

1. 나의 생활에 대하여

저는 스스로 자신을 생각해 보면 뭐 하나 그리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저것 어깨너머로 배워서 Amateur 수준을 넘지 못하고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어디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그래서 나태하고 게을러 던 자신을 후회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얼마만큼 사명을 다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 향한 경건과 사람을 향한 의를 얼마나 이루었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였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교만하고 利己主義的으로 살지는 않았는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았는지?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담대한지? 우리는 한 해를 뒤로 하며 먼저 자기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남긴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남긴 것이 없다면 눈물로 회개하며 지난 한 해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 가장 처음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였고, 에스겔 선지자도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어떻게 헤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自由를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 戰死한 어느 軍人이 자유를 위해 싸우다 흘린 핏방울로 천국을 열려고 했으나 천국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빈민촌에서 一生을 봉사하며 성인으로 산 수녀가 수고의 땀과 悲哀의 눈물로 천국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죄인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흘린 회개의 눈물로 천국 문을 열어 더니 천국 문이 열렸습니다.

회개의 눈물은 천국 문을 여는 귀중한 보배와 같은 것입니다. 聖者 ‘St. Augustin’는 어머니의 기도에 힘입어 성자라 불리며 그 유명한 ‘참회록’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기록되어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보면 새 옷과 입히고 가락지를 끼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돌아봐 점검하는 송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2. 가정생활에 대하여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이라는 노래가 뼈 속 깊이 사무치는 계절인데, 너무 많은 歲月이 흘러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 버린 추억이지만 그래도 그 많은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갈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家庭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베푸신 가장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夫婦에게 주신 의무가 ‘생육하여 번성’하라는 것입니다. 지구촌은 기후 변화로 인하여 생태가 파괴되어 未來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갈수록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의무를 다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이야 이민의 문을 열어 감소하는 인구를 충당할 수 있지만 한국은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에서 창조의 질서를 무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舊約聖書 창세기에 보면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고 그럼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성경에는 일곱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들이 누구냐면 바로 그의 아내와 가족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큰 배에 노아의 식구만 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하는 일꾼들이 상당수 타고 있었지만 성경은 노아의 일곱 식구만 언급한 것을 보면 노아의 말을 믿고 배에 오른 사람은 식구뿐이었습니다. ‘알렌 레드패스’는 ‘어떤 사람이든 자기 신앙의 실재가 가장 엄격한 시험을 받는 곳은 바로 그의 가정이다’고 했습니다.

1863년, 이른 봄이었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남군과 북군은 Spotsylvania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북군 군악대는 자신들의 군가인 “성조기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남군은 “딕시”를 연주하여 대항하였습니다. 이래서 남군과 북군의 노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북군 밴드가 군가를 중단하고 “Home Suite Home”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연주가 시작되자 쌍방의 병사들은 모두 조용해졌고, 남군의 밴드도 같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험악한 일선에서 난데없이 아군과 적군의 대 합창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Home Suite Home”은 병사들의 마음을 고향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들은 24시간 휴전을 약속하고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행복한 가정만큼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은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가장 건실한 인격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가정은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었는가? 아니면 욕을 먹는 가정이었는가? 우리 가정은 이웃에게 그리스도인으로써 덕을 세웠는가? 아니면 비방거리가 되었는가를 점검하고 회개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 교회생활에 대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 믿는 성도들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성도는 개인이 완전한 교회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개인이 다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도를 지체로 하고 지상에 그의 증인으로 교회를 실현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땅에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그래서 부패하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교회에 보내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신앙에 책임을 지고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며 충실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부패한 교회를 위하여 중대한 사명을 감당할 있게 되는 것입니다.

今世紀 들어 많은 이단들이 ‘은혜와 은사’라는 이름으로 교회 밖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사라지거나 범죄 집단화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구원파’라든지 ‘신사도운동’이라든지 ‘신천지’라든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단들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 교회는 애처롭게도 숫자에 대하여 민감하고 근심이 많습니다. ‘어떻게 많은 사람을 끌어올 수 있을까?’ ‘어떻게 헌금 바구니를 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대부분의 교회들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양이 아니라 질을 염려하십니다.

‘Choline Williams’는 교회의 모습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적 동기의 교회인데 이런 교회는 미지의 세계를 믿음으로 순복하다고 했고, 둘째, 모세적 동기의 교회로 이런 교회는 조직제도를 상징하며 조금 위험하다고 했고, 셋쩨, 바울적 동기의 교회가 있는데 영적 회심을 바탕으로 한 교제가 넘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는 모든 사람의 공동체입니다. 위에 열거한 교회 형태 중 세 번째 형태를 근거로 해서 교회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이었는가를 되돌아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참 잘 참았다는 영적 결산을 해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영적 결산을 요구 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지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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