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영접합시다.

By 담임목사 on April 5, 2020

본문: 요한복음12장12-19절
제목: 예수님을 영접하자

1967년 Stanley Kramer 감독한 영화 ‘Guess Who’s coming to Dinner’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당시 社會相의 편견과 갈등으로 점철된 위선적 모습을 고발한 영화라 화제가 되었습니다. 백인 처녀가 여행 중에 만난 총각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총각은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이지만 事故로 아내와 아이를 잃은 홀아비였고 흑인이었습니다. 처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가정으로 외동딸이었습니다. 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로 사회적 편견과 갈등을 넘어 사랑의 결실을 이루며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할 單語는 ‘편견’으로 單語의 뜻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同床異夢, 같은 자리에 자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十字架를 생각하시며 입성하시는데, 제자들은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과 많은 군중들은 이제 세상이 바뀌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13절에 보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는 영화의 장면처럼 당시 社會的 편견과 갈등과 위선으로 점철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왕으로써 신랑 예수를 원했는데 어린 나귀를 타고 초라하게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많은 군중들 아니 제자들까지도 꿈이 깨어지고 하늘 무너지는 좌절을 맞보게 됩니다.

新約聖書 마태복음10장40절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했고 , 마태복음7장12절에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첫째,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둘째,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바위 같이 큰 재앙을 등에 지고 맞이하는 뜻 깊은 종려주일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영접하고 남을 대접하는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言語의 혼돈으로 대화가 단절되었습니다. 그 결과 서로 마음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의심과 오해로 인하여 갈등만 고조되었고 결국 인류는 전쟁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이 언어의 혼돈은 부활사건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이 방언이라는 언어로 사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3장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두고 하신 말씀인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교회의 상징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교회였으나 영적으로 죽은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복음의 열정도 식어지고, 구원의 감격도 잃어버렸습니다. 세속화된 교회, 유명무실한 형식적 교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 라오디게아교회를 엄히 책망하시면서 회개하고 깨어서 주님과 참다운 교제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문밖에 서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밖에 서신 예수’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굳게 잠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어느 사람이 이 그림을 구경하다가 화가에게 묻습니다.

그림이 참 좋은데 한 가지 흠이 있는데 문에 손잡이가 없습니다. 화가가 대답합니다. 참 잘 보셨네요. 일부러 그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문은 안에는 손 고리가 있지만 마음 문 밖에는 손 고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문은 자신만이 열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우리는 적은 고집, 적은 편견, 적은 교만, 적은 지식을 가지고 그냥 마음의 문을 닫아 두지 마시고 여시기를 바랍니다.

2.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億萬長者가 죽었습니다. 자식도 일가친척도 없어 수일동안 인기척이 없다고 이웃이 신고를 해서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엄청난 대저택에 온갖 쓰레기로 차있었습니다. 일생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어 쓰레기덤이 속에 파묻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방도 비우지 못하고 있으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 속에 채워져 있는 교만과 허영심, 시기와 증오, 음란과 방탕 등을 몰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 회개한 마음을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셨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기업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을 비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속에 일생 가득 채워져 있는 모든 죄악을 물아내야만이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종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의 그릇을 깨끗이 비어 예수님을 영접해 드리도록 합시다.

3.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영접해 드려야 합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가 특별새벽예배를 드리면서 기도 제목을 써서 기도함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90%가 자식을 위한 기도제목이고 10%가 다양한 기도제목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성도들의 마음에 1%정도의 크기로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우리 중심에 만왕의 왕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교회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종려주일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평화의 왕 예수님을 영접하는 날입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 우리 사회, 더 나가 온 인류가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신자가 목사를 찾아와 “진정한 변화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목사가 대답을 합니다. “마틴 루터는 세 가지 변화를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돈지갑의 회심이 그것입니다. 머리의 회심이란 지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복음의 세계, 진리의 세계를 깨닫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가슴에 뜨거운 사랑과 정의가 있어 그것을 이웃에 실천해야 하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변화입니다. 물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회심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간 종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깨끗하여지고, 나의 마음에 화평이 가득하며, 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내 마음에 참 생명을 얻음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종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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