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

By 담임목사 on April 12, 2020

본문: 마태복음28장1-10절
제목: 예수님의 부활

復活이란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났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5장17-18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라.”했습니다. 한 마디로 基督敎는 부활의 종교라는 말입니다.

금년 부활절은 基督敎 역사상 가장 처참한 부활절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Corona Virus로 인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성전에 나오지 못하고 영상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뜻 깊은 부활절 예배를 드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 것일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죽음보다 생명이 강함을 보여 줍니다.

실로 우리 인간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나 슬픔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죽음이 생명보다 강해 보입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람은 없고 심지어 동물까지도 다 죽음으로 인하여 사라져 갔습니다. 오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벌의 벌 짓을 다 해보았지만 결국 우매한 짐승조차도 다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고 말한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무덤을 열고 다시 사신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생명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히틀러 밑에서 순교한 독일 목사 본회퍼는 감옥에 있을 때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이제 나의 신앙에 관하여 완전히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신앙은 무거운 짐 아래서도 깨어지지 않고 항거한다. 주저하거나 절망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감옥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배웠다.”

처형당하는 날, 간수가 그를 불러 낼 때 그는 이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로써 끝이다. 그리고 생명의 시작이다.” 죽음보다 생명이 강하다는 사실을 증거 해 보이며 순교로써 부활의 확신을 후세에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생명 다 하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증오보다 사랑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세상살이 속에서는 증오가 사랑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사고는 서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증오심을 버리고 사랑을 실천하셨는데 바로 십자가입니다.

요한복음15장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고, 12절에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분체이시라는 것입니다.

전도서9장3절에는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우리 인간들은 모두 惡, 즉 증오로 가득 찬자들이라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며 다투다가 죽음으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증오로 죽음을 당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때문에 사도바울은 로마서8장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랴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증오보다 사랑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좋은 것은 이네 잊어버리고 나쁜 것은 죽기 직전까지 아니 유언으로까지 기억합니다. 사랑은 이네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지만 증오는 무덤까지 가지고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가 십자가 죽자 예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뿔뿔이 헤어져 고향으로 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엠마오 상의 두 제자는 장래 일을 걱정하며 슬픈 기색으로 길을 가고 있을 때 사랑이신 예수님께서 찾아 오셔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예수님을 알아본 제자들은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또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양을 치라, 네 양을 먹이라”고 그 길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다가 성령이 바람과 같이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부활절 예배를 드리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불의보다 정의가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의롭게 살고자 하면 인생살이가 순탄하지만 않습니다. 그래서 불의가 정의보다 강하게 여겨집니다. Corona Virus 사태를 지켜보면서 힘 있는 자는 살고 힘없는 자는 죽는다는 사실에 더욱 더 실감할 수 있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짓밟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무시하고 것이 현실입니다.

舊約聖書 하박국1장13절에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라고 그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처한 현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패역한 시대에 살고 불의한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런 일은 그야말로 불의보다 정의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불의가 정의를 이긴 다고 생각하며 절망합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무로 돌리시고 ‘니체는 죽었다’라고 선언하셨다. 결국 니체는 미쳐서 죽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만일 기독교가 예수의 부활을 허위로 선전했다면 기독교가 2천년 후인 오늘까지 존재할 수 없고 점차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없을 것입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해서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 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 한사람이라도 본심에 돌아갔더라면 예수의 부활이란 전부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순교를 하면서까지 입증한 제자들의 진실성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벌써 그런 사람과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 자체가 우리들의 구원을 영원한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우리를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일은 현실적으로도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죽음보다 생명이 강하고 증오보다 사랑이 강하며, 불의보다 정의가 강하다’ 사실을 변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더욱 더 깨달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함께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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