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얼굴

By 담임목사 on June 2, 2019

본문: 고린도후서4장5-7절
제목: 예수님의 얼굴

자신의 얼굴을 자기 스스로 그린 그림을 自畵像이라고 합니다. 어떤 심정으로 그림을 글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지성과 인격이 그림을 통해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한 마디로 마음이라고 하고, 그리고 교육과 수양을 통해 습득한 품격을 인격이라고 합니다.

마음과 인격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언어와 행동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따라서 스스로 그린 자화상과 남이 그린 자신의 얼굴은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이중인격자라고 하지요.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Socrates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얼굴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성화’라고 하는데 中世紀 종교개혁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대표적인 것은 하프만이 그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얼굴과 다빈치가 그린 성만찬에 나타난 주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두 그림 모두 스스로 마음속에 그러지는 주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마음으로 그려지는 주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믿는 성도들의 얼굴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우리 심령 속에 비춰지는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10장30절에 주님께서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는 밤하늘의 달빛처럼 나의 심령을 낱낱이 살피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혈액검사나 C,T 촬영으로 병을 진단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낱낱이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누가복음19장에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입니다. 키가 아주 작은 삭개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만나고 싶어 거리로 나갔는데 도저히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궁리 끝에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주님께서 이 모습을 우러러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간절한 삭개오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삭개오가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합니다. 7절에 보면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했고 8절에 보면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합니다.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셨고, 뭇사람들을 향하여는 엄히 노하시어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자비하신 얼굴로 사죄와 용서의 은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소독의 필요성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비록 수술 기계를 아무리 발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완전하게 근본적으로 소독을 하지 못하면 치료하기 위해 만든 기계가 살인하는 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 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기계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고통을 치료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소독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제단에서 불꽃으로 완전하게 소멸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세상의 고통을 치료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지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우리 삶을 살피시는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의 사정과 형편이 있어서 몸부림치는 생활, 끊임없는 근심, 시도 때도 없는 찾아오는 걱정들 때문에 때로는 곤욕스럽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형편을 다 아시고 보살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6장25-34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들과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므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걱정근심을 잊고 사는 비결’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교육자 ‘카네기’는 책에서 본인의 경험을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는 소년시절 염려와 불안 그리고 공포심에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었으나 세월을 흘러 성장한 후에 믿음으로 살게 되니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였다.

미국의 세계적인 갑부 세 사람에게도 근심이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재물이 불의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과 백약이 무효인 대머리 때문에 근심했고, ‘모건’은 코가 크고 눈이 붉은 자기 용모 때문에 늘 근심했고, ‘카네기’는 불구인 딸 때문에 근심했다고 합니다. 과연 세상에서 근심 걱정 없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염려는 누구나 버릇처럼 하기 쉬운 것입니다. 안 해야지 하면서 다시 하고, 안 한다고 하면 먼저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염려를 안개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일대를 30미터 두께로 짙게 덮을 수 있는 안개가 실은 한잔의 물이 600억 개의 물방울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염려가 처음에는 한 잔의 물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의 내면세계를 온통 가릴 수 있는 안개로 돌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하나님도, 그의 약속도, 응답의 손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많은 염려가 자주 우리를 괴롭힐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을 모두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아무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라고 권면합니다.

3. 우리 앞날을 비취시는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23편에 다윗의 고백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 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주님은 우리의 앞길까지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은 늘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완전합니다. 내일이 두렵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의지할 것이 필요합니다. 인류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겨울날 연탄과 쌀만 넉넉하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행여 도둑이 들지는 않을까? 연탄가스가 세지는 않을까? 끝임 없이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壯元及第만 하면 萬事亨通할 줄 알았는데 더 높고 깊은 웅덩이와 장벽들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한 솔로몬이 인생을 가리켜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한 것입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자신의 마지막 생일에 확신과 기쁨에 차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늙지 않았다! 자넨 내가 늙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밝은 희망이나 멋진 미래를 가지지는 못했을 거야!” 며칠 후, 이 빛나고 의기 앙양한 선언을 두고 어느 친구 리빙스턴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자네는 한창 자라고 있는 늙은이일세!”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앞날도 이처럼 밝지 않은가! 고린도전서2장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어둠에 싸여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도래하는 심판의 날에 이르게 될 때 그들의 영혼은 어둠에 휩싸이고 공포로 마비되게 됩니다. 말 많은 무신론자 ‘토마스 홉스’는 죄 많은 인생을 마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암흑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구나!”라고

우리는 죄 많은 인생들이지만 주님의 얼굴을 두렵게 생각하지 말고 온제나 솔직하게 회개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대하면 주님의 얼굴은 부드럽고 인자한 얼굴이 될 것입니다. 비록 노심초사 근심 많은 우리지만 부끄럽게 생각지 말고 주님께 아뢰면 지극히 반갑고 기쁜 얼굴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 앞길이 험하고 고난하다고 하여도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나 인도해 주시리라 믿고 따라가면 결국은 천국까지 이를 것을 굳게 믿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귀한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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