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으로

By 담임목사 on April 22, 2018

본문: 사도행전3장1-10절

제목: 예수의 이름으로

東洋的 思考로 우리 人間에게는 運命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運命을 國語辭典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때문에 인간들은 타고난 運命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드리고 피할 수 없는 宿命的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앞으로 닥칠 여러 가지 일이나 사태에 대하여 불안과 두려움에 한계를 뛰어넘은 어떤 능력이 필요해서 宗敎가 발달한 것입니다. 이런 기대에 가장 잘 부응한 종교를 基督敎라고 할 수 있고, 오늘 본문이 이 사실을 증거 해주고 있는데, 기대의 표현을 ‘기도’로 ‘성전’을 종교로 ‘신유’를 현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위기이나 사건을 당하게 되면 그 무엇인가를 의지하거나 붙잡고자 하여 힘이 될 만한 곳을 찾게 됩니다. 본문에는 이 힘을 구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성전미문의 앉은뱅이입니다. 그는 그조차 스스로 할 수 없어 남에게 의지하여 성전 미문에 나와 동냥으로 삶을 연명해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본문1절에 “제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세.”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사도행전2장4절에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했는데 이 사건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합니다.

마가 다락방 성령 강림사건이후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예수의 부활과 하나님의 복음을 힘차게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 중에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려고 성전에 올라가다가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자 “뛰어 서서 걸으며” 라고 했습니다.

  1.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본문8절에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며 나이는 40여 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면서부터’라는 한 것을 보면 그는 숙명적으로 저주받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奇蹟’이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아주 기이한 일.”을 가르칩니다. 여기서 상식이란 의학적 상식을 이르는 말입니다.

기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는데 있어서 첫째, 사람을 통해서 베푸셨습니다. 인류에게 원시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치명적인 불치의 병이 나병, 혹은 문둥병, 혹은 한센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수많은 불치병이 치료 가능해졌지만 아직도 나병은 불치병입니다.

구약성서 열왕기하5장1절 이하에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라고 했습니다. 임금의 총애를 받던 장군인지라 좋다는 약과 나라 안팎에 도인들을 불러 별의별 짓을 다해보아도 효과가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때 군대장관 나아만의 집에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계집종이 있었는데, 계집종이 이 소리를 듣고 3절에 보면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선지자는 엘리사인데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였습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계집종과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는 기적도 모세를 통해서 하셨고, 블레셋의 거인골리앗을 무너트릴 때도 소년 다윗을 통해서 하셨고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하실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셨습니다. 본문6절에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하자 앉은뱅이가 즉시 일어나 “뛰어 서서 걸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모든 기적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옛사람, 즉 죄인인 나의 몸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장사지네고 십자가 그리스도보혈의 피로 씻어 다시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만이 하늘 축복과 은총이 우리에게 임한다고 성경이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東洋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符籍(부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불 밑이나 베개 속에 넣어 놓기도 하고 속옷에 넣고 다니고 집안 구석구석 붙어 놓기도 합니다. 사람이나 집안에 잡신을 쫓고 재앙을 물리친다고 여겨하는 미신적 행위입니다. 심지어 시험을 치는 시험장에도 부치고 온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혹자는 믿는 성도들까지도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을 부적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문명의 발달로 성도들이 理性的으로나 知性的으로 성숙되어지면서 교회 안에 일어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 불신이 今世紀 들어 교회 안에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존 밀림에서 활동하던 선교사가 후원하는 교회에서 집회를 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선교하는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할 때입니다.”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때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 큰소리로 ‘사기 치지 마시오. 그런 기적을 본 사람이 있소?’ ‘있으면 한번 얘기해 보시오.’ 빈정거리는 웃음으로 외칩니다. 이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이 일어나 ‘이 보시요!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내가 그 증거요’라고 더 큰소리로 외칩니다.

이어서 이 사람이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나는 저 선창가에서 구걸해서 먹고살던 다리병신 거지이었소. 어느 날 저녁, 술에 취해서 교회 앞을 지나다가 ‘일어나 걸어라 내가 세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라는 노래 소리에 끌러 들어와 무심코 노래를 따라 부르던 중에 다리가 펴진 거지 아무개요.

‘나는 우연히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고쳐주신 줄로 믿습니다.’라고 소리치자 빈정거리던 사람은 줄행랑을 치고 온 회중들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 많은 도마처럼 ‘아니 그걸 어떻게 믿니’ 속으로 외치는 회중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예배드리는 우리 가운데도 속으로 빈정거리는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몇 해 전인가요? 제가 치과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쳤는데 옴짝달싹 못하고 병원에서는 이상 없다하고 이런저런 약에 한약까지 달려 먹고 침도 맞고 침대를 굴러서 올라가야할 지경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침대를 기어 올라가 너무 아픔을 참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내일 새벽예배 드리려 가야해요” 그 날 밤 뭔가 모르는 구덩이 같은 것이 허리를 휘어감더니 번쩍 일어나 화장실에 갔습니다.

셋째, 모든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본문8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며, 또한 우리의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5장13-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기적의 현장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받아야 할 영광의 자리에 특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대형교회에 담임목사가 출타하여 다른 목사가 설교를 하면 두 가지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하나는 그 주일에 출석교인이 줄고 둘째는 헌금이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믿음은 오직 어떤 큰일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나는 다만 예수의 이름으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2.  기적의 현장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본문에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앉은뱅이 이렇게 셋이 있던 자리에 갑자기 수많은 군중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오천 명이나 믿는 자가 생겼습니다. 사도행전4장4절에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베드로나 요한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초대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즉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를 세우는 모든 일에 심부름꾼으로 불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구원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큰일은 ‘구원을 베푸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관련하여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서리리까?’ 갈수록 교인 수는 줄어들고 교회도 문을 닫고 있습니다. ‘누가 이 위기에 처한 교회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새로운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켜 세우셔야 합니다.

교회는 훌륭한 기독교들이 모여 있는 전시장 아닙니다. 교회는 불완전한 성도들을 교육시켜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픈 환자들을 돌보아 주는 의사이며 세심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병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숫자에만 관심을 갖고 근심을 합니다.

어떻게 많은 사람을 끌어 올 수 있을까? 그러나 예수는 양이 아니라 질을 염려하십니다.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철학을 전하고 사상을 논하며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볼 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 구원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영혼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우리 교회를 구원의 처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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