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야 할 일

By 담임목사 on July 29, 2018

본문: 고린도전서9장16-27절

제목: 우리가 해야 할 일

어느 은퇴하는 老 장로님께서 저에게 꼭 한 마디 당부할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입니다. 너무 옳게 하시려고 애쓰지 마세요.’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倫理的 道德的 가치관에서일까? 아니면 신앙적 觀點에서 일까?

저는 반항적 기질이 있어 바른 말 잘하고 不義에 못 참고, 그래서 주위가 늘 소란스럽고 차가웠습니다. 나이가 들어 목회를 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바르고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노력했지만 돌아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 한국의 한 政治人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倫理的 道德的으로 보면 그래도 사회적 지도자로써 존경받아야할 청렴한 사람인데 하는 아쉬움에 故人의 죽음을 애도하고 문상하는 행렬을 보며 왜 그런 극단적 행동을 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질타할 수 있을 만큼 흠이 없는가?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니 감히 그를 향하여 단 마디도 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하고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있을까? 나의 죄가 그 사람보다 조금 가벼워서일까? 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죽을 용기가 없어서일까?

저는 하루하루를 罪人 된 心情으로 혹시 하는 마음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勞心焦思하며 두려움에 순간순간을 견디어 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더해만 가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肉身의 쇠약함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 사람과 내가 다른 것은 단 한 가지 나는 예수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 구원의 역사를 의지하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죄를 안 짖은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용서와 사죄의 은총이 날마다 매순간마다 나의 삶의 현장에서 역사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아멘, 비행기를 탈 때 국내선은 운전면허증을 국제선을 여권이 있어야 하고 유효기간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어느 성도가 한국에 계신 아버님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러 가야 하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여권갱신을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보기 딱해 여기저기 부탁해 보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한 주간을 보내고 고향에 도착해보니 아버님은 이미 장사되어 땅속에 묻혔습니다.

마태복음25장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고 했고, 3절에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라고 했고 4절에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 잔치 집 문이 닫히고, 문을 열어 달라 애원하는 처녀들에게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성령을 가리키고, 성령이 떨어지면 여권유호기간이 지나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것과 같은 결과가 오개 됩니다. 죽음이 비겨가는 구원의 역사는 여권과 같은 성령이 충만할 때만 가능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구원을 받으면 부자로 잘 살고 병들지도 않고 시험이나 환난과 고난 따위는 남의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영생을 얻기 위함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기 위함입니다. 천국잔치에 참여허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근본이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고, 공생애 기간 중에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섬기는 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된 성도의 모습은 교만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겸손한 자이며 섬김을 받은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대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남을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험 당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원망하며 스스로 높아지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서 베드로전서5장5절에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허리를 동이라는 옷을 입으라는 뜻으로 앞치마를 매는 것처럼 하인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에서 ‘맨다.’는 의미에서 ‘일할 태세를 갖추다’는 것입니다. ‘락탄티우스’는 ‘우리가 교회 문에 이를 때에 우리 뒤에 남겨져 있는 종교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 안에서 뒤에 남겨지는 종교는 없다는 뜻인데, 쉽게 이야기 하면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갈 때 예수님을 교회에 남겨두고 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의무를 떠나 우리의 가슴에 담아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실행하고 그것을 우리가 처한 장소들에서 드러낼 때 그것이 종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동전을 만드는 것은 물질과 재료가 아니라 인침입니다. 인침이 없으면 동전이 아니라 그냥 쇠나 구리 덩어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섬김을 이루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인침입니다. 왕이 쇠나 구리로 만든 동전에 인을 쳐야 비로소 화패로서 통용되는 것처럼

우리가 한 행위에 하나님의 인이 쳐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인이 쳐진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고” 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으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의 전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2. 법대로 해야 합니다.

식당에 가서 보면 미국에서 자란 아이와 한국에서 자란 아이를 금세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아나 무인처럼 나대는 아이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의 한국아이로 보면 됩니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여기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이 사랑을 은혜로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란 은혜라는 이름 아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의 원리를 어긋나는 것이라면 따르지 않아야 하지만 성경의 원리에 맞는 것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직분에 따른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의 가르침 아래 집사들이 실무로 교회를 이끌어 간 것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 지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는 진리의 구별에 있어 교회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할례 문제가 생겼을 때 예루살렘의 사도, 장로 회의에 맡기고 순종하였듯이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인정하고 요구하는 교회생활의 원칙이 성경에 반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고 했고, 히브리서3장18절에는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3.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장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했고,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규칙과 질서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이 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사랑은 반드시 성경의 진리 안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벗어난 사랑은 오히려 교회를 타락하게 할 뿐입니다. 또한 외적인 조직과 질서에만 의존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일에는 사랑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규칙이 있다고 해도 실행함에 있어 사랑이 없으면 율법주의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21절에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힘든 율법을 강요함으로 굴레를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질서를 지키되 연약한 자에게 비난과 책벌이 아니라 그를 사랑으로 감싸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돌보는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교회의 질서는 바로 세워질 것이며 참된 믿음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자신 마땅히 헤야할 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섬기며 말씀의 진리에 따라 서로서로 사랑하며 복된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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