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받는 기도

By 담임목사 on February 9, 2020

본문: 골로새서4장2-4절
제목: 응답받는 기도

1950년 6.25전쟁 이후 韓國 길거리에는 고아와 거지 그리고 쓰레기를 주어 담은 넝마주의들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避難民들이 모여 사는 避難民촌이라고 부르는 洞內의 조그마한 깡통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거리를 떠돌다 밤이면 교회에서 잠을 자곤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제 또래의 한 아이가 강단 앞에 엎드려 매일 기도를 하고 있어 물었습니다.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그 아이의 대답은 ‘共産黨의 망하고 김일성을 죽어 달라.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 富者로 잘 살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十餘 年이 지난 후 추억을 더듬어 그 洞內를 찾아 갔더니 너무 많이 변해 알아볼 수가 없는데, 깡통교회 자리에 잘 지어진 예배당이 있고, 큰 갈기로 商街들이 자리고 잡고 있는데 行商를 하는 한 商人의 얼굴이 낯익어 통성명을 해보니 바로 그 아이이었습니다. 서로 너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제가 물었습니다.

‘교회는 잘 다니느냐?’고 이미 술에 약간 취해 있었는가 싶어는 데, ‘예수는 무슨 예수, 하나님은 없어, 예수쟁이들 다 사기꾼이야’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기도 했는데 여전히 공산당과 김일성이은 살아있고 자신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내지 방편은 결코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가득 쌓여 있는 창고 문을 여는 열쇠이지 원수나 갚은 도구나 방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선생은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과 능력을 주시고 응답하시며 치료하시고 형통케 하시며 지시하여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데 이 시간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가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신실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본문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기도생활에 몰두해라. 견고하라, 떠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2장42절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때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잊고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평소에는 세상일에 몰두하다가 기도하고 싶다고 느낄 때나 위기가 닥쳤을 때만 기도하는 성도들이 대부분입니다. 사도바울선생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권면의 말씀은 시간과 장소와 때를 무시하고 기도하는 뜻이 아니라 기도를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對話하듯이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 詳考해야할 것은 ‘신실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입니다. 信實을 국어사전에 ‘믿음직하고 착실함.’이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신실한 기도는 ‘믿음직스럽고 착실하게’하는 기도를 뜻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신실함이란 무엇일까요?

주일예배 후 성가연습이 끝나면 우리 아이들을 학교 parking장에 내려놓고 돌아오면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의 젊음도 부럽고, 청춘도 부럽고, 사랑도 부럽지만은 가장 부러운 것은 그 나이에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예배에 자리에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부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 예배의 자리로 나와 기도하는 것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시고 가장 신실한 성도의 자세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부러운 것입니다. 舊約聖書 예레미야33장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아이들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신실함을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너희는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다.(요엘2:26-28)”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믿음과 헌신이 성장하고 적당한 때에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 응답을 늦추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쓸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실 응답을 받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한 마음으로 항상 감사혐 기도에 힘써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감사함으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2절 하반 절에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응답받는 기도는 깨어 기도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재건할 때 처음 사용했습니다. 느헤미야4장9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수꾼을 두어 방비하는데”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을 두어 방비했다는 것은 깨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깨어 있어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깨어 구하기를 힘쓰라.”고 강조했습니다. 제단에 불이 없으면 그 분향이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듯이, 기도가 없이는 예배도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솝우화 가운데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실한 개미와 여유만 부리는 베짱이의 대조를 통해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무더운 여름 동안에 개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베짱이”는 나무 그늘에서 노래만 부르고 놀기만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름·가을이 끝나고 추운 겨울에 굶어 죽게 된 베짱이가 양식을 얻기 위해 개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에 개미가 여름에는 노래를 했으니 겨울에는 춤이나 추렴.”이라면 도움을 거절합니다. 다른 말로 겨울에는 추위에 몸이나 떨고 있으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세월 바뀌어 다르게 풍자된다고 합니다. 개미는 몸을 혹사시켜가며 열심히 일했더니 그 후유증으로 몸져누웠고, 베짱이는 자신이 연주한 음악으로 음반을 낸 결과 대박쳤다는 이야기, 열심히 일한 개미가 여왕개미에게 다 바쳐서 개미도 베짱이와 같은 팔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베짱이를 본받아 대박을 치고자하는 사람들 때문에 온 세상이 黑巖으로 가득합니다. 편하게 살고, 편하게 믿고자 하는 성도들로 넘치는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개미와 같이 쉬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참된 기도는 영적 힘과 경성함을 요구하며 이것은 하나님과 성령께로만 올 수 있는 것입니다.

3.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본문3절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인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고 기도해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목적이 없는 기도를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마6:7)”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주셔야 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따라 행하시고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면서 인생이 허무하고 세월이 허망하게만 느껴집니다. 꿈을 앉고 넘어온 ‘선 너머’ 고개 마루가 눈앞에 다가 서니 지난 세월이 원망스럽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고, 아무리 세어보아도 헤아릴 것이 없습니다.

눈이 발목까지 덮어도 쉬지 않고 찾아다니던 그 열정의 열매도, 영하2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 무릎이 시리도록 새벽을 깨워 드린 기도의 열매도 찾을 수 없고 혹시 실로와 같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억울한 심정을 누를 길이 없어 잠 이루지는 못하는 밤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육십년 지기 친구인데 전화를 받자마자 뜬금없이 ‘김 목사! 나는 김 목사가 참 자랑스럽네.’합니다. 무슨 자다가 봉창 뜸은 소린가 싶어 ‘뭔 소리여’ 하니 자초지종 이야기를 합니다. 일을 하다가 웬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고향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나 몇 살이냐’ 한국사람 만나면 꼭 따져 묻는 말입니다.

서로 따져 묻다가 ‘아, 그럼 김 동진 목사를 아르냐?’ 묻기에 친구라고 하니 그 분이 나는 어느 교회 은퇴 장로인데 미국에 와서 예수를 믿고 교회 다린지 30여년에 수많은 목사를 모셔 받는데 그 중에 최고의 목사였다. 그리고 그때 성도들이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김 동진 목사가 최고였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교회를 떠난 지 근 15년 흘렸고 이 후 단 한 번도 그 성도들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해본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오직 신실한 성도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최고의 목사였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친구가 자랑스럽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 바라보니 비록 솔로몬의 성전도 솔로몬의 왕궁도 예루살렘의 성벽도 이 땅에 남아 있지 않는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지만 하늘 그곳에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하늘에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의의 면류관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할 때 우리를 하나님의 뜻의 알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능히 이루어지도록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언치 않으시는 것을 결코 뒤엎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의 기도는 목적이 확실해야 합니다. 목적이 없는 막연한 기도는 결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구체적이면서도 하나님 중심적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간부터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에 순종하셔서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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