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넓게 열라

By 담임목사 on February 10, 2019

본문: 시편81편8-12절
제목: 입을 넓게 열라

‘침묵은 금이다’는 말이 있고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말도 있습니다. 二重的인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도 ‘말을 아끼라’ ‘입을 넓게 열라’고 해서 어디다 장단을 맞춰야할지 민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말을 안 하면 바른 말하라고 윽박지르고 말을 하면 자발 맞다 나무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哲學者 Archimedes는 ‘말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할 때도 안다’며, ‘자신이 나서서 말해야 되는 때를 아는 사람은 언제 침묵해야 되는지 안 다. 그런 사람은 발언할 때 자신의 의사를 논리정연하게 말하며, 가만히 있어야 될 경우에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준다. 이런 자세는 여러 사람과 모여 의논할 때나 사고적인 좌담에 있어서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시편119편131절에 보면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우리 성도들이 말할 때가 언제인가를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권면’과 ‘하나님의 약속’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는 권면의 말씀과 ‘내가 채우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찬양의 입을 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서 에베소서5장19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음악으로 신앙을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음악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찬양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음악, 즉 Classic Music는 거의 교회음악입니다. 성전 미사에 사용하던 음악입니다. 그 음악은 교회 부흥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초창기 한국교회는 풍금이 들어와 찬양함으로 예배를 은혜롭게 하였고, 이후 피아노가 들어와 그 분위기를 한층 높였고, 今世紀에 들어서는 각종 악기가 들어와 예배 분위기를 고취시켰습니다.

사도행전16장25절에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들더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를 하다가 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때 두 사도는 간절히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고 찬송이 절로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던지는 말씀입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절망 속에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때 언변 좋은 바울이 일어나 罪囚들을 향하여 큰소리로 ‘이 보시요! 지금 네가 기도 중에 이런저런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설교를 했다면 그 옥에서 순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침묵하며 찬양으로 그 은혜를 많은 죄수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때로는 우리들도 고난과 시험 속에서 은혜를 받게 됩니다. 바로 이때 사탄이 찾아옵니다. 입을 크게 열어 그 은혜를 소모시키려고, 바로 이때가 침묵하며 찬양할 때입니다. 그러면 그 찬양의 소리가 회중에 전달되어 그 은혜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입을 넓게 열면 사탄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失言’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말을 안 해야 할 것을 해 버린 것을 뜻합니다. 공자의 ‘논어’에 위령공편에 보면 “함께 말할 만한데 함께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고, 함께 말하지 않아야 할 때 함께 말을 하면 그것은 말을 잃은 것이다. 어진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또 말을 잃지도 않다.”는 글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저에게 지정헌금이 들어왔을 때입니다. 누가 했을까? 더구나 궁지에 몰렸을 때, 혹은 절실할 때 인지라 더욱 더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지금까지 짐작만 할뿐 누구인지 모릅니다. ‘기도 응답을 받았다며 하나님 은혜다’라고 넘어갈 수 있고 회계부에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두 가지를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강 짐작 가는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본일도 없습니다. 혹시 왼손이 모르게 한 선행이 땅에 떨어질까 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자랑하거나 생색을 낸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오직 찬양으로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로마서8장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바꾸어 기쁨과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원망과 불평과 시비와 험담, 자랑에만 입을 넓게 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시평 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28: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아름다운 입술로 은혜의 찬양을 불러 영육 간에 크신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기도의 입을 넓게 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17장1절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군을 인솔해서 전쟁에 나갑니다. 이때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합니다.

민수기11장2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진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끊임없이 불평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말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이번에는 출애굽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진노의 불로 진 끝을 사르게 하셨습니다. 주어진 현실에 불만을 품고 불평을 일삼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끝까지 참고 견디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잠언19장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때 능력을 덧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엘이야 기도할 때 비가 아니 오고 또한 기도할 때 비를 주고 열매가 맺고, 기도할 때 귀신이 내어 쫓기고, 기도할 때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전심전력으로 하나님께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이사야38정5절에 보면 히스기아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가 엎드려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15년 생명을 연장해 주시고 그 증표로 일영표를 15도 뒤로 돌려놓으셨습니다.

기도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고,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이도 양보하시는 힘이 되고, 기도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바 없는 특권이고, 기도는 전능하신 아버지가 그 자녀들의 필요와 염려에 관심을 나타낼 수 있는 길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고는 기도로 열리고, 믿음으로 그 열쇠를 돌리 것이다 했습니다.

시편39편12절에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게 마옵소서.”라고 했고, 마태복음7장7에 예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르리라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야고보4장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간절히 기도하고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셔서 반드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비랍니다. 기도는 하늘의 열쇠이며, 세사의 기둥이고, 헌신의 불입니다.

3. 전도의 입을 넓게 열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를 길러내지 않는다면 교회가 무엇 때문에 있습니까? 이런저런 핑계기 있습니다. 교회역사에 가장 위대한 전도자는 사도바울입니다. 그런데 그 사도바울이 자신을 분토만도 못하다고 했고, 하루에도 수천 번씩 자기 자신을 쳐 복종시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내가 그리스도가 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위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첫째, 네 자신을 보이지 않게 감추었다는 것이고, 둘째, 네 자신을 보이지 않게 더 감추었다는 것이고, 셋째, 네 자신을 보이지 않게 오히려 더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네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나니 이제 네가 산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중심에 불붙는 것 같아서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그의 마음이 답답하여 도저히 견딜 수 없다.(렘20:9)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고 네 입을 나팔로 사용하여 외치라 내 백성의 허물을 고하라”(사58:1)고 했습니다. 전도는 우리 믿는 자들의 최고 사명이요 영광입니다. 열왕기7장9절에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임하리라”고 했고, 디모데후서4장1절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으로서 입을 크게 열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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