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By 담임목사 on June 10, 2018

본문: 사사기21장25절

제목: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스라엘의 역사, 구약성서에 ‘Exodus’ 대탈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四 百年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탈출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 이르자 먹을 것이 떨어지게 됩니다. 배고픈데 장사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시절을 떠올립니다.

고기냄새가 코에 진동하는 것 같아 고기냄비를 그리워하며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노예로 돌아가서 고기나 싫어 먹다 죽은 것이 났다며 백성들이 수군거립니다. 바로 이것이 노예근성이라는 것입니다. 고기와 자유, 빵과 해방 그 가치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노예근성이 깊이 박혀 가치관의 혼돈이 온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軍隊 나가 최전방 휴전선에 배치를 받아 근무하는 아들이 애처롭고 걱정돼 진돗개 한 마리를 구해 초소를 지키는데 쓰라며 부대로 가져왔습니다. 용감하고 똑똑한 진돗개가 종횡무진 비무장지대를 왔다 갔다 하며 무장공비가 내려오는지 살핍니다. 전진을 깊숙이 드나들며 북한 개를 만나 교제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진 깊숙이 들어가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 개 한 마리가 뒤를 쫓아옵니다. 진돗개가 묻습니다. ‘너는 왜 자꾸 나를 따라 오냐? 너 잘못하면 죽을 수 있으니 그만 돌아가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따라오자 진돗개가 ‘너 혹시 배고프니?’묻자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합니다.

재차 묻습니다. ‘그럼 너 혹시 집이 없니?’ ‘아니’며 머리를 졌습니다. 더욱 궁금해진 진돗개가 ‘그럼 왜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따라 오냐?’고 다그칩니다. 그러자 북한 개가 ‘먹을 것이 없어도 아니고 집이 없어도 아니다.’고 하자 진돗개가 ‘배부르게 먹고 잘 집이 있으면 그만이지 뭐 더 바랄게 있냐.’며 비웃듯 말하자

북한 개가 목소리를 높이며 ‘아니 그게 아니야, 조금 부족해도 먹고 자는 것은 걱정이 없는데 마음대로 짖을 수가 있어야지, 짖고 싶을 때 짖지 못하니까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 그래서 죽기 살로 따라 나섰어, 그냥 지나치는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본능대로 살면 되는 짐승도 그들이 원하는 자유가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먹고 자는 일보다 더 귀한 자유를 버리고 노예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금수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각기 좋은 대로 행하면 그 사회는 혼란해지고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의하여 다스려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士師記의 특징은 백성의 타락,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을 사용해서 그들을 치심, 백성의 회개, 사사를 세움으로 백성을 구원한 이야기가 일곱여 차례 걸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서 레위기와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예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격한 율법과 규례를 세워 지키게 하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지내던 광야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열조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문명을 접하며 먹고 살만해지니 엄격한 율법과 규례가 불편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그것은 사실 무정부 상태로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에 나쁜 것을 옳은 것으로 잘못 판단하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소견대로 행동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것은 되는대로, 제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대로 행한다면 악을 옳게 여기는 사람은 악을 행할 것이므로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입니다.

思春期로 접어든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상관하지 말아 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그리고는 모든 일에 삐딱하게 나갑니다. 마치 청개구리처럼 하는 일마다 거꾸로 합니다. 그 순간 집안은 엉망이 됩니다.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습니다. 엄마가 밥 먹어라 하면 내가 알아서 먹어 상관 하지 마.

이 상태가 길어지면서 심해지면 탈선하고 맙니다. 창세기6장1절 이하에 보면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좋은 대로 아내를 얻어서 결혼을 하였으므로 자유연애의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애서도 자유로이 결혼하였으므로 그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관심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기 소견대로 행동하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노아 방주’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 방주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다고 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자기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즐겼습니다. 그 결과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홍수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변성하여 문병이 발달하자 홍수를 피하자며 자기들 소견대로 탑을 쌓았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흩여짐을 당하고 전쟁이라는 무서운 재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심판은 무슨 심판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먹고 마시고 즐기자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벌자 왜 이렇게 도는 일이 없어 원망과 불평으로 뒤를 바라보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살아가고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주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8장36절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려고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했고, 갈라디아5장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고

히브리서2장14-15절에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어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허심이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3장17절에는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께서 우리에게 죄에서 자유를 주셨고, 율법에서 자유를 주셨고, 그 결과 우리는 사망의 세력에서 자유 함을 얻었고, 주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소견대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 날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제각기 자기 좋은 대로 산다면 세상을 헌란해지고 참 된 자유를 도리어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의하여 비로 다스려져야 합니다. 거기에 참된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떠나 진리를 버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며 살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여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19c말에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이 심한 박해를 당하게 됩니다. 2차 세계전쟁 중에 독일에 의해 6백만 유태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죽었습니다.

New York에 가면 자유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1886년 프랑스가 기증한 것입니다. 그것에는 ‘환영의 시’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피곤한 자도 가난한 자도 어중이떠중이도 내게로 오라 동경하는 자유를 호흡하라 누더기가 된 난민도 집 없는 사람도 폭풍에 시달린 사람도 나에게, 이 붐비는 해변으로 오라 황금 문가에서 내 등불을 높이 들리니’ ‘엠마’라는 시인이 쓴 詩입니다.

19c말 소련에 살던 유태인들은 짐승보다도 더한 천대를 받았습니다. 코사크 기병대가 유태인 마을을 모조리 습격하여 상육하고 불을 질렸습니다. 그 죽음의 현장에 바로 이 ‘엠마 나자루스’라는 유태인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미국행 배를 탈 수 있었고 문학에 소질이 있던 그녀는 신문사의 기자와 시인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자유국가가 자신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총칼에 쫓기고 불길 속을 헤맨 경험이 있는 엠마에게 환영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엠마는 자유의 여신상 제막식에 참석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병들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엠마는 병석에 누워 자유의 여신상에 바치는 시를 썼다고 합니다.

자유란 인간이 누려야할 보배로운 것입니다. 이 보배로운 자유를 누리는 우리 믿는 성도들의 태도를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고 했고,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 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2:16)”고 했고,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고전10:29)고 했고, “그런즉 자유 함이 악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 함을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그 자유를 악을 가리 우는데 쓰지 말고, 남의 자유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그 자유로 약한 자에게 거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을 구속하려고 세운 것이 아니요 참 자유를 주시려 함이니 하나님께서 옳다고 허락하시는 대로 살아야 축복을 받게 되는 이 은혜와 자유가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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