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By 담임목사 on August 19, 2018

본문: 사도행전18장5-11절

제목: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마게도냐에서 베뢰아로 내려와서 그곳에 실라 디모데를 에 남겨두고 아덴으로 떠났고, 얼마 후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로 각각 파송한 뒤 바울은 고린도로 갑니다. 고린도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본문은 아덴에서 파송한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돌아오면서 실라는 빌립보 교인들이 모금한 선교헌금을 가지고 오고 디모데는 유대인의 박해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신앙을 지키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이 더욱 열심히 고린도에 복음을 전파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크게 세 가지의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말하라’ ‘말하지 말라’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통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요? 아마 이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이성적이고 인격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세 가지로 교훈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말하라

요즘 한국에서 1천만 관중을 돌파한 ‘공작’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흑금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북파공작원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장안에 화제가 되자 많은 언론사가 앞 다투어 기사를 쓰고 있는데, 어느 방송사와의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서 보통 사람과 다른 점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방송사 진행자가 집요하게 던지는 질문에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여 끝까지 절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 훈련된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바로 이 절제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면 그 여파 때문에 자신은 물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 자신의 문제, 우리들의 문제, 이 사회의 문제는 할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할 말을 하고 있는가?’ 1% 정도 밖에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말 때문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시험에 들지는 않을까.

본문 9절에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령, 즉 주님께서 사도바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집요하게 반대하며 박해를 가해 왔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계획적으로 따라다니며 방해를 하고 괴롭게 했습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후서11장23절 이하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라고 했고,

본문6절에는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 했다”고 했고, 그 이유를 본문5절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 하니.”라고 했습니다. 종합해 보면 말하다가 어떤 때는 돌로 쳐서 죽이려 하고. 어떤 때는 옥에 가두기도 하고, 노상에서 암살 하려고 까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9절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말하라고 재촉하시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침묵할 수 없었던 이유는 10절에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주님께서 신변 보장을 해주시겠다고 하시니 더욱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하고 싶은 말 99%는 은퇴하고 글로 써서 남기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문제는 갈수록 언어도 달라지고, 事理 分別도 희미해지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그래서 사력을 다해 건강유지에 최선을 다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고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간단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영생의 길이 여기 있다고 잠잠하지 말고 자신 있게 말합시다. 찬송할 때 찬송하고, 기도할 때 기도하고, 그리고 입을 말할 때 말하고, 그리고 침묵할 때 입 다물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회피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할 수 있을 때 말합시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2. 말하지 말라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면 수다쟁이라고 하고, 말을 안 하면 엉큼하다고들 합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워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 잠언10장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지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고,

15장23절에는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했고 17장27절에는 “말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2장36절에 “무익한 말은 심판을 받으리라.”고 하셨고, 37절에는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고, 사도바울은 에베소서4장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고,

5장4절에는 “누추하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했고, 디모데후서2장16절에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했고, 베드로도 베드로전서2장1절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정리하면 ‘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말을 하지 말라야 할까요? 신약성서 요한계시록21장8절에 보면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고, 요한복음8장44절에는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지 말라야 할 말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란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기 위해 꾸미는 말이나 남을 해롭게 하기 위해 지어내는 말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만들어 내는 말 등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마귀의 수하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덕이 안 되는 말이나 남에 유익이 되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야 합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거지에게 ‘아! 이 병신아’라고 한다면 비록 거지 앉은뱅이라고 할지라도 덕이 되거나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여지 집사가 찾아와서 입에 담지 못한 상소리로 남편 욕을 퍼붓기에 ‘그냥 이혼해.’ 그러면서 위로 한다고 남편 융을 좀 보았더니 화를 버럭 내고는 갑니다. 어떤 경우에도 남의 허물이나 단점을 지적하고 들추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운동을 하려가면 거의 노인들만 있습니다. 그런데 한두 명은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대부분 탁자에 둘러앉아 수다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대화 내용은 자기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주말에 손자손녀가 다녀갔다든지 아들이 옷을 선물했다든지 서로 자랑하느냐 정신들이 없습니다.

우리네 같으면 한두 달 후면 서로 얼굴 돌라고 말 안하는 사람이 있을 만한데 일 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같은 사람이 둘러 앉아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관심을 가지고 보았더니 서로 남에 흉을 보지 않는 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간질 하는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헐뜯고 비방한다는 것은 계획적인 범죄에 해당합니다. 흉기에 찔린 상처는 치료하거나 성형수술을 하면 되지만 말 때문에 입은 상처는 치료되지 않고 오랫동안 아픔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본디 말이란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칼이나 총보다도 더 날카롭고, 더 잔인한 힘으로 남을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말을 삼가고 절제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3. 말을 들어야 합니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하여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했고, 야고보 사도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고, 계시록1장3절에는 “듣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잘 들어야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10장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듣고 깨달아 받아들일 때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해석하고 조명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풍성한 음식을 보기만 하고 먹지 않아 굶어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 영혼이 메말라 죽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설교 시간에 딴전 피우고 거나, 졸고 앉아 있거나 잡념을 가지고 딴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귀가 밝아서 잘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잘 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구약성서 에스겔3장27절에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듣고 안 듣는 것 순종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유가 아닙니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축복과 변영을 누리게 되고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입을 열어 전도합시다. 불필요한 입을 열지 맙시다. 잘 듣고 순종합시다.

No Response to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