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의 터를 넓혀라.

By 담임목사 on September 6, 2020

본문: 이사야54장2-3절
제목: 장막 터를 넓혀라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유다 땅에 귀환한 이후 이스라엘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는 묵시적 말씀으로 황폐한 예루살렘이 많은 사람으로 붐비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신약교회의 부흥을 상징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한 마리로 흩어진 자들이 돌아오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新舊約 聖經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좁히라’고 하신 말씀은 없고 ‘넓히라’는 말씀은 여러 곳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무한한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은 넓히고자 하면 바다처럼 넓어질 수 있고 좁아지려면 바늘구멍처럼 한 없이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장막 터를 넓히라’고 했는데 의미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음의 장막을 넓혀야 합니다.

新約聖書 히브리서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고, ‘世上事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편81편10절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인들 별수 있겠어. 아예 생각도 않고 입을 열어 구하지도 않은가 하면 구하긴 해도 重言復言 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기도한다고 되겠어. 시간만 낭비하지’ 구시렁거리며 不平不滿만 일삼은 자들이 넘쳐납니다. 요즈음 저도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數와 量’에 대하여 꿈을 꾸며 구하지 않은 점입니다.

설령 조금 무모하며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좀 더 크고 넓은 꿈을 꾸어야 하는데 勞心焦思 조심스럽게 목회를 하다가 보니 큰 탈은 없었지만 헤아릴 것이 별로 없이 목회를 마치는 것 같습니다. 히브리기자는 믿음을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말씀에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저의 땀과 눈물 그리고 수고와 헌신이 그곳에 남아 있을 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되리라”(마9:29)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소경들에게 네가 너희들의 눈을 뜨게 할 줄로 믿느냐고 물으실 때 ‘예’라고 대답하는 소경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소경들이 눈이 밝아졌습니다. 왜 우리들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불만스러움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양 만큼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돈 병철’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제일 富者를 이르는 말입니다. 아직도 그 후손들이 富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감히 누구도 넘보지 못할 富의 상징 같은 것이었는데, 요즈음 그 상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신흥부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地球 村을 뒤 흔드는 COVID-19으로 인하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이 교회가 아닌 가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건축하고 있는 교회의 피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고 장막의 터를 넓혀야 하겠습니다. 터를 좁히며 작아짐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 전도로 장막을 넓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사명 가운데 가장 큰 사명이 전도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기자는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전도하지 않으면 죽은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살아 역사하는 믿음이 되고자 한다면 믿는 대로 행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전도하는 일을 뜻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유언과도 같은 말씀으로 우리 믿는 자들의 사명이며 과제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인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개 화가 미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교회가 평안하고 부흥하면 성도들의 가정도 평안하고 사업도 번창하지만 교회가 작아지면 가정도 평안하지 못하고 사업도 작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舊約聖書 에스겔서3장17절에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네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가서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4장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전도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협력하여 장막을 넓혀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했고, 사도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빌2:2)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6장15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주의 종들과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나 방관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여 일하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장님과 다리를 저는 사람이 숲속을 거닐다가 산불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매우 놀랐으며 곧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무언가가 타는 냄새를 맡은 장님은 놀라 그만 불이 타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리를 저는 사람이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그 쪽으로 뛰어가면 안 돼!’

장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며 물었습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몸을 돌려야 하지요?” 다리를 저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여보쇼, 내게 좋은 생각이 있소. 나는 온전한 눈으로 당신이 원하는 만큼 멀리까지 길을 안내할 수 있소. 하지만 내가 다리를 절어 이 불 속을 빨리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 당신의 어깨 위에 나를 태워 주시오.

그러면 나는 뱀이나 가시덤불, 그리고 불과 다른 위험 속을 잘빠져나갈 수 있도록 당신에게 지시할 수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안전하게 도시에 도착할 수 있지 않겠소?” 잠시 후 장님은 그의 지시에 따라 위험 속을 빠져 나와 무사히 도시에 당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聖經은 “하나님께서 일치하는 마음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겔11:19)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장막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여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믿음과 전도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장막을 넓히는 책임을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이 시간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의 넓이를 점검하여 살피고 더 나가 우리의 개인의 장막의 터와 교회 장막의 터를 넓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고난과 시험이 이어진다고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의 장막을 넓히는 일을 최우선에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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