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합시다

By 담임목사 on August 12, 2018

본문: 디모데후서4장1-5절

제목: 전도 합시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것이 이제 우리 아이들이 또 다시 학교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미국의 도시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기숙사로 떠나는 딸에게 먹을 것, 입을 것, 그것저것 준비해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 보내며 길가까지 따라가며 먼발치로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오니 깜빡 잊고 빠트린 가방이 있습니다.

서둘러 차에 가방을 싣고 딸아이를 따라 나섭니다. 당시는 휴대전화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달리 방법이 없어 학교까지 갈 요량으로 달려갑니다. 절반이나 가서 휴게소에 들어서는데 딸아이가 트렁크를 열고 엄마가 싸준 이것저것을 골라 쓰레기통에 버리고 급하게 길을 재촉하여 달려갑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엄마가 멍 때리고 있다고 정신을 차리고 도대체 뭘 버리고 가는 가 궁금해서 쓰레기통을 살피다가 야연질색하고 말게 됩니다. 냄새나는 반찬이야 이해가 가지만 그리고 유행 지난 옷이며 신발까지는 그런다고 하여도 아침저녁으로 한 구절씩 꼭 읽어라 신신당부하며 넣어 준 성경책을 집어던지고 갔습니다.

스스로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이 엄마 집사님이 울며불며 집으로 돌아와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남편 장로님이 퇴근하여 부인 집사의 모습을 보고 놀라 ‘아니 왜 그래, 서울에 장모님 돌아가셔서’ 부인이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차마 남편에게 말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한 주간을 보내고 주일 날 예배당에 나가 예배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다고 돌아왔습니다. 또 한 주간을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심정으로 보내고 다음 주일에 예배당에 가서 또 눈물만 흘리다 돌아 왔습니다. 심방오신 목사님이 자초지종을 듣고 ‘기도합시다.’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사도바울이 아주 강력한 당부의 말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는 권면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강력한 명령을 내렸을까? 사랑하는 자식 같아서 일까? 아니면 너무 신뢰하기 때문일까? 물론 사랑과 신뢰하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디모데가 복음 전파의 존귀한 사명을 가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귀한 사명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숭고한 사명입니다.

본문1절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존귀한 사명을 명령하기에 앞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복음 전파자의 숭고한 사명을 충분히 인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첫째, 이 사명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받은 사명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앞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믿는 모든 성도들이 이 숭고한 사명을 이행해야 하는 것은 그 사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행한 수고에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거룩하신 심판자 앞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두려우면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씀으로 사명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의 행동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 끝날 하나님께 보이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믿는 성도들은 심판대 앞에서 잘 했다고 칭찬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심을 의미합니다. 그 날 이 사명을 잘 완수한 충성스러운 자들에게는 상급과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셋째, 엄히 명령하신 사명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명령을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령했습니다. 여기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주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믿음을 갖는 일은 복음을 듣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 사명은 우리 믿는 자들이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명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우리 믿는 자들 모두에게 있습니다. 남녀노소 차별 없이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 구분이 없습니다. 학식의 유무에도 상관이 없습니다.

2. 최선을 다해야 할 사명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떠한 사도행전5장42절에는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주어진 사명은 생명을 구원할 메시지입니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다시 말하면 때와 장소에 구별 없이 항상 힘써야 할 일입니다. 또한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사명은 다만 전파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로써 견책해야 됩니다. 죄인을 견책하여 바른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3장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회개할 수 있도록 책망함을 주저치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권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경책이나 감시를 통하여 상대의 마음을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책과 감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책망 후에는 부드러운 권면으로 감싸주어야 합니다.

감정의 동물인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입니다. 경책하고 정죄하는 일은 쉽지만 권하고 감싸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책만 하고 위로하고 권면하지 않을 때는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 수 없는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성경책을 쓰레기통에 버린 아이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주일 날마다 예배당에 올라와 눈물 흘리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운지 보다 못한 목사님이 아이를 심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엄마, 아빠 만날까봐 천국에는 안가겠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하지’

심방예배를 드리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상도가 결혼 후 삼십년 만에 집을 장만해서 이사를 해서 동내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시내에 나가 지나다가 아이들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신발을 만드는 가게를 물어도 잘 가르쳐주고. 옷장을 만드는 집 등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을 다 물어보아도 아주 상세히 길을 가르쳐주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는 아는 아이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이는 물건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상세하게 알고 있으나.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등한시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풍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건 값 일불 이불 따지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악을 쓰며 살다가 사람답게 사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 낚는 일보다 고기 잡는 일에 너무 취해 가장 소중한 것들을 유보하고 망각하고 살았습니다.

물질을 얻기 위하여 사람 만들기를 포기한 체 분주하게만 살아왔습니다. 예쁜 옷을 마련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처럼 우리는 삶의 중심이 흐트러진 세상에서 갈팡질팡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들의 아이들이 성경책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와 자원봉사자를 파송한 나라가 미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파견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교회는 쇠퇴하다 못해 거의 비어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현상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주일학교가 없어진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성경책이 쓰레기통에 던져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그들은 가족과 생활터전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물고기는 곧 돈이며 생활인에게 있어서 돈은 마치 전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활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도 생활 전체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사람 낚는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이 웃을 수 있는 길, 절망에 빠진 사람이 희망을 찾는 길, 지옥 가던 사람이 천당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뿐입니다.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전도이고 그것이 우리 믿는 성도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인들에게 먼저 가정에서 경건을 보이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다른 일을 맡기에 앞서 과부들은 가정적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도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그의 가장 추악한 자아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훌륭한 희극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참으로 좋은 친구’라 불립니다. 한 사람이 “당신은 이 좋은 친구들 중 한 명을 집에서 본 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합니다. 이 단순한 질문 속에서 얼마나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까? 전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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