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을 전하라

By 담임목사 on April 19, 2020

본문: 로마서10장13-15절
제목: 좋은 소식을 전하라

‘Corona Virus’인하여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언제나 이 사태가 끝나고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릴 수 있나?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식이 늦어지자 좀 世俗的이기는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라는 大衆音樂에 위로가 됨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더 한 숨이 깊어지는 것은 익숙해질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또한 하나 근심이 되는 것은 ‘노아의 방주’에 나만 들어가면 된다는 이기심입니다. 혼자 나가 성전에 앉아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르지 못하는 불안함입니다.

그래서 많은 牧會자들이 기도 제목이기도 합니다. 或者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다 죽은 것이 낫다고 하는 목회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지키라는 말대로 교회 밖에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할 문제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靈肉간에 살자고 드리는 예배이니 말입니다.

때문에 좋은 소식이 애달프게 간절합니다. 이때나 저때나 헤아리며 잠을 자다가도 눈을 뜨고 ‘Smart phone’ 커고 끄고를 반복하며 밤을 지세우곤 합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보내고, 전파하고, 듣고, 믿으며,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는 지상명령이고 이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며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19장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복음의 좋은 소식을 듣고 믿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드려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는 자들입니다.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歷史上 최고의 복음 전도자 사도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전9:16)고 했고,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나 않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될 예수님의 명령이요 성도의 사명이며 후에 상급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일생 가운데 이러한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외경에 의하면 도마는 노예 신분으로 목수가 되어서 인도에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인도에 가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 팔려 가는 길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도마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흔연히 자원하여 노예가 되고, 목수 기술을 배워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그의 기술이 뛰어남을 보고 인도 왕은 거액의 돈을 주면서 왕궁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왕궁을 지으려는데 마침 인도에 참혹한 흉년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도마는 감히 그 큰돈으로 사치스런 집을 지을 수가 없어서 그 돈으로 양식을 구하여 죽어 가는 사람들을 많이 살리고 구제를 하였다고 합니다.

기일이 되어 왕이 궁전을 살펴보니 궁전은 되어있지를 않고 돈은 도마가 다 허비했습니다. 왕은 노하여 도마에게 사형언도를 내리고 죽일 날짜까지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도마의 사형집행 전날에 왕의 사촌 동생이 죽었습니다.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서 묘한 환상을 보고 깨어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보니 굉장히 화려한 큰 궁전이 하나있는데 너무 좋아서 곁에 가보니 그것은 바로 자기의 형인 인도 왕의 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이 궁전을 누가 지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사도 도마가 왕을 위해 지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깨어나 돌아와서 그 사실을 형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때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도마를 죽이려는 판인데 그가 자기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큰 궁전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도마를 석방시켜 주고, 오히려 도마의 말을 따라서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도마를 도와서 힘써 복음 전도를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이겠습니까? 현세만 바라보던 왕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보았을 때 그의 생명이 변화되고 풍부해지고 아름다워지고 거룩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 전파는 하늘나라에 집을 지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牧會를 하면서 안타깝고 슬픈 때는 늘 혼자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아니면 무엇인가 상의할 상대가 필요할 때 주위를 돌아보면 늘 혼자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화의 상대를 주님으로만 삼았습니다.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혹시 오해나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의기소침하기 십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이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고질적인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셔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짐으로서 그들에게 복음 전파하셨고 그들은 복음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들 중에 국민의 존경을 가장 많이 받았던 사람은 제4대 대통령 매디슨의 부인 돌리 매디슨(Dolly Madison)이었습니다. 한 번은 신문 기자가 질문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매디슨 부인은 가식이 아니라 정말 깜짝 놀라면서 대답합니다.

“나는 내가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사랑이나 존경을 받으려고 해본 일도 없습니다. 단지 젊어서부터 혼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교훈을 따라 되도록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 보려고 힘쓰는 것뿐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교만함에 차별하는 것입니다.

차별이 없는 사랑의 교제가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손님대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면서 우리가 자다가 깰 때가 바로 이 때 인줄 알아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며 봉사의 생활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능력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권능이 있어야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전도 좀 하라고 하면 ‘아이고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요.’ ‘사람이 있어야지요.’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런저런 핑계가 많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듣는 말 가운데 ‘예수 믿는 것들이 더해’라는 말입니다. 제가 군대 생활할 때 도움을 준 친구를 근 오십년 만에 만났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옛날 추억 속의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습니다. ‘왜 교회는 안 나가?’ 그 친구 이야기를 듣고 놀라면서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첫 번께 임무가 시청료를 수금하는 일이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그렇게 애를 먹이여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었는데 주일날 동내교회를 나갔더니 그 아주머니가 헌금 위원을 하더랍니다. 그 길로 나와서 오늘까지 교회와 담을 쌓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막9:42)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소망과 삶의 보람, 즐거움과 평안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와 전하는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고 영혼과 신앙에 유익을 준다면 이 귀한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연약한 도구를 통해 가장 강력하게 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처음 연약하고 어리석은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 어리석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가 가장 지혜롭고 잘난 사람들을 구원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 메시지는 어리석고 연약한 설교자에 의해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사람들은 참으로 연약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부였고, 세상에서 지탄받는 세리장이였고, 창녀였고, 문둥병 자였습니다. 셋째로, 그것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서 환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었고, 세상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연약한 사람들에게 연약한 도구를 통하여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소식을 들을 때 기분이 좋고 나쁜 소식을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늘의 은혜와 축복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No Response to “좋은 소식을 전하라”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