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사는 생활

By 담임목사 on March 15, 2020

본문: 빌립보서4장10-13절
제목: 주 안에서 사는 생활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은 ‘피곤한 눈으로 허공을 보면 허공의 별꽃이 어지럽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꿈에 들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동내 우물가에서 머슴이 둘이 잡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머슴 하나가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이게 뭐야, 내가 아무리 물통에 물을 잔뜩 길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냔 말이야. 얼마 안 가서 다 써 버리고 또 물을 길어 와야 하니, 이렇게 빈 통 들고서 말이야.’ 하고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세상만사가 억울하고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원망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불평을 듣던 다른 머슴이 대답을 합니다. ‘야, 그것은 네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니냐? 나는 우물에 올 때마다 빈 통으로 오지만 갈 때에는 꽉꽉 채워 가지고 가는 뿌듯함 때문에 즐겁고 기쁘기 이를 데 없다. 생각해 봐라, 내가 물통에 물을 꽉꽉 길어 가면 집안 식구들이 얼마나 유용이 쓰냐. 너도 마음을 고쳐먹으면 즐겁고 기쁠 터인데 늘 불평만 하니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같은 머슴 신세지만 빈 통으로 왔다가 채워 가지고 가는 것을 불평할 수도 있고, 물을 채워 가지고 간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도록 일만 한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억울한 쪽을 택하느냐 감사하고 기쁜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는 것이 세상만사인 것이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후에 가문과 가족과 직위와 명예와 유산까지 다 버리고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선교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때문에 바울에게는 육적으로 부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궁핍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자족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12절에 보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의 부요함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였고, 이런 영적인 부로써 육의 궁핍도 극복하여 자족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장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 사도바울은 권면합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와 신비한 결합을 한 사도바울의 신앙체험을 통해 주 안에서 사는 생활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1926년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 영어로 ‘Great Depression’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깊게 이어진 경제적 재난 중 하나입니다. 경제적 활동이 쇠퇴하여 inflation로 인하여 物價가 치솟고 國民總生産이 감소되어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져 사회적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거리마다 술에 취해 방황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자영업자들은 폐점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고 은행이 마비되고 사제기로 인해 물량이 감소되고 阿鼻叫喚 風前燈火와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지금 전 世界는 코로나 virus로 인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專門家들에 의하면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심이라고 합니다. 이 공포심 때문에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성도들은 주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 죄를 사함 받은 기쁨,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통하며 보호받는 기쁨, 영원한 소망의 기쁨을 가진 자들이기에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은 세상에서 기뻐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 느헤미야8장10절에 보면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이야기하면 오늘 주의 전에 나와 예배를 드렸으니 공포심을 떨쳐버리고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래전에 LA에서 폭동이 났습니다. Central LA에서 장사를 하던 韓人들의 가게들은 거의 초토화 되었습니다. 폭동이 끝나고 그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 이 사람들은 보험들 들지 않고 세금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주일날 쉬지 않고 일한 사람들입니다.

보험으로 보상을 받아 가게를 다시 수리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보험을 가입한 사람들입니다. 건물을 다시 짓은 사람, 이 사람들은 보험도 들고 세금도 제대로 보고하여 재난 기금으로 새 건물을 건축할 있었습니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주일날 가게 문을 닫고 교회 나와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지역사회에 나가 자원봉사를 한 사람들입니다. 폭동이 나자 동내 사람들이 자원해서 가게를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복구하는 동안 십년 이상의 매상을 올렸다는 후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안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슬픈 마음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하지만 기쁜 마음은 새로운 힘과 능력 있는 생활을 비결을 가져다줍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우리가 주안에서 기뻐할 때 이 모든 어려움을 참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니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이니라(고후4:17-18)는 말씀처럼 영원하신 소망의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념을 가지고 사는 생활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異口同聲으로 ‘아무 생각 없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들 합니다. 한 마디로 신념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 原因은 父母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自暴自棄해서 하는 말입니다. 신념을 잘못 가르친 결과입니다.

스스로의 재능과 취미를 근거로 신념을 가져야 하는데 父母의 욕심에 따라 신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개울가에 나가 우는 청개구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음에 임박한 엄마 개구리가 늘 반대로 행동하는 아들 개구리에게 자신이 죽으면 개울가에 묻어라 유언을 했습니다.

엄마개구리가 죽자 정신을 차린 아들 개구리는 엄마개구리의 유언에 순종하여 개울가 엄마개구리를 묻었습니다. 그 결과 子孫萬代에 이르러 비만 오면 개울가에 나가 울어야 하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엄마개구리와 같이 자식에게 신념을 잘 못 가르치면 우리 자손들도 웃음거리로 전략하고 말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비록 약하고 죄인이지만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내가 주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주님의 능력이 나를 뒷받침해 줄 때 그 능력을 힘입어 주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겸손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주안에서 은혜가 충만할 때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강할 때나 평안할 때나 곤란할 때나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든지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와 찬송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안에서 모든 시련과 핍박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부터 우리들도 사도바울처럼 신념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3. 죄를 멀리하며 사는 생활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인류가 당하는 재앙은 죄악으로 인함이라는데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聖經에 하지 말라는 말과 행동을 하면 죄라고 했고, 먹지 말라는 것을 먹으면 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멀리하면 화를 면하게 된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화를 면하는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소원가운데 하나입니다. 일찍이 사도바울도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7)”라고 했고, 24절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했습니다. 패배의 탄식을 외쳤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려는 간절한 노력을 해본 사람이 있다면 바울의 탄식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위로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아랍 상인이 추운 겨울 사막에서 천막을 쳐 놓고 살을 여미는 찬바람을 피해 편하게 앉아 있었다. 밖에는 그의 낙타가 떨고 서있었습니다. 이 낙타가 내려진 천막 문을 젖히고 고개를 들이밀고서 주인에게 고개만 좀 넣고 있자고 청하였습니다. 주인은 못 마땅하다는 듯이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이 낙타 한다는 소리가 “내 코는 훈훈하고 편안하지만 내 어깨가 몹시 춥군요. 그러니 제 어깨와 앞발만 좀 들여놓게 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낙타의 어깨와 앞발을 들여놓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이 낙타는 살며시 주인에게 접근하여 처량한 목소리로 자기의 육봉과 몸을 좀 들여 놔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머리는 따뜻하지만 뒷몸은 추워서 떨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인은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이제 낙타는 거의 다 들어 와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 이 낙타는 자기 뒷발을 들여놓자고 애걸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주인이 이에 동의하여 뒷발을 다 들여놓자 이 조그만 천막 안에 들어선 낙타 한다는 말이 “주인님, 우리 둘이 여기 있기에는 너무 좁군요. 주인께서 나가 주시는 게 어떨까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죄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각성하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을 붙잡고 어떠한 환경에서나 무엇을 하든지 주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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