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기적

By 담임목사 on April 29, 2018

본문: 사도행전5장1-11절

제목: 죽음의 기적

舊約聖經 출애굽기20장2절 이하 그리고 신명기5장6절 이하 十誡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단순한 倫理道德이나 生活신조 혹은 法律로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사이의 독특한 관계, 즉 언약을 근거로 그 언약에 기초하여 행동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28장에 보면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하고 공모하여 형 애서를 기만하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長子 권을 가로채고 형애서가 죽이려 하여 도망하여 광야에 돌베개 베고 잠을 자다가 꿈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누운 땅을 너와 너희 자손에게 주겠다. 모든 족속이 너와 너의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는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에 야곱이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 이야기 중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하라와 말라.’ 그리고 ‘언약과 서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것은 ‘언약’이라고 하고 사람이 하나님께 한 것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서원’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서원과 연관이 있는 십계명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입니다.

이 계명을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 중에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권고하셨습니다. 서원기도는 특별히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응답해 주시면 내가 그 대신에 이런 것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고 하는 기도이고 기도 응답이 왔을 경우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가 미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언약을 세우시면서 야곱에게 십일조를 하면이라든지 십일조를 하라든지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고 조건 없이 축복을 약속하셨고 이에 야곱은 ‘그렇게 하시면’ 이라는 조건을 달아 서원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서원을 지키지 않아 해가 미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2장42절 이하에 보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초대교인들이 42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고 했고, 43절에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라고 했고, 44절에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로 크게 부흥의 불이 붙었고 이에 밭과 집을 팔아 헌금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4장36절에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라고 했고, 37절에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바나바가 온 성도들에게 추앙을 받자, 이 소문을 들은 아나니아 夫婦도 밭을 팔아 바치기로 합니다. 본문에 보면 밭을 팔아 얼마쯤 감추고 사도들의 발아래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夫婦가 차례로 죽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교회 안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를 생각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세상 명예를 얻을까 하여 그릇된 생각으로 명예를 탐하는 죄와 하나님의 사람 사도들을 속인 죄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 일이 우리게 주는 교훈을 살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 교회를 욕되게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본문1-2절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이 夫婦가 자신들의 소유를 팔고자 한 것은 이 夫婦도 큰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4장33절에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돈이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나바는 밭을 팔아 사도 앞에 드리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영육 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잠언22장4절에 “겸손과 여호와의 보응은 재물과 명예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물질은 내 것이면서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면 죄가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할지라도 돈을 사랑하면 그 돈이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6장24절에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경이로운 사건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현장을 보았고, 베드로의 은혜로운 설교도 들었고, 서로 떡을 나누는 친교도 누렸고, 혹은 회중의 기도를 인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자리 잡은 물질과 세상에 대한 미련은 더 이상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본문3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숙이고 땅 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 고 했습니다. 아나니아 夫婦는 땅 값의 일부만 사도들에게 갖다 바치며 마치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가장했고 사도들이 그 사실을 모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고 성령을 속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 夫婦의 위선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위선은 거짓이며 교만입니다. 교활한 속임수이며, 책동입니다. 그러나 은밀하고 교묘한 위선일수록 예기치 않은 일로 폭로됩니다. 디모데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두메산골 시골 마을에 조상 때부터 머슴으로 살아오던 사람이 자식까지도 머슴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 절망 가운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자기하고는 아주 많이 다르게 생긴 西洋 사람이 ‘예수 믿고 천당하세요 예수 믿으면 복 받아 잘 살게 됩니다.’ 논두렁 좁은 길을 오가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이 소리에 귀가 번쩍하여 서양사람 따라 나서자 이번 공일(주일날)에 마을 중앙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로 오라고 합니다. 그 날 말씀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한 마디로 우리 인간이 가지는 죽음의 공포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합니다. ‘주님! 저를 축복하시면 이 자리에 성전을 헌당하겠습니다.’ 그러나 富者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요? 온 성도가 합심하여 성전 건축에 전력을 다하지만 가난한 소작인들의 힘에 부칠 수밖에 없지요. 새벽마다 기도하고 철야로 기도해도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都會地 한 병원에 어느 난무한 중년 남자가 안과에 진료를 접수하고 Chapel에 들려 기도를 합니다. 진료실에서 안과 의사가 묻습니다. ‘어디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환자가 ‘한 쪽 눈을 팔려 왔습니다.’ 깜짝 놀란 의사가 무슨 말씀이냐며 의심스런 모습으로 환자를 ‘바라보며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합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꼭 좀 팔수 있게 해달라며 부탁합니다. 그러자 의사가 담당자를 불러 서류를 작성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왜 파냐는 것입니다. 한참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 하던 환자가 절대 비밀을 지킬 것을 부탁하며 눈을 팔아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소작인이나 머슴들인데 아무리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노력해도 성전건축을 할 수 없어 자신의 눈을 내놓기로 하나님께 서원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 한 순간에 입과 입을 통해 온 병원에 펴지고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전 직원이 그 달치 봉급에서 십일조를 내놓기로 작성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이길 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고 죽음을 넘어가는 방법입니다. 이 교회가 바로 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지요.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2. 외식하는 자는 망합니다.

부정적인 말이라 길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위선을 가장 쉬운 우리말로 하자면 ‘남이 장에 가니 가름지고 장에 간다.’ 마음에는 없는데 바나바와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헌금하니 아나니아 夫婦도 은혜 받은 것같이 자신들도 밭을 팔아 헌금을 하며 자신들도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자랑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외식하는 자들을 향하여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 가려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마23:13)” 책망하셨고 마태복음23장23절에“화있을진저 외식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을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한 마을에 만석꾼이 살았습니다. 말이 만석꾼이지 마을 전부가 자기 땅입니다. 요즈음 갑 질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부자 땅에 부쳐 농사지어 먹고 사는 소작인들입니다. 갑 질이 이만저만 아니지요. 남부러울 것이 없는 富者가 나이가 들어가며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언덕 아래 있는 예배당에 새로 부임한 전도사가 인사를 와서 돌아가며 ‘예수, 믿으세요. 영원히 삽니다.’합니다. 그 밤에 그 말이 귀에 맴돌아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온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예배당 종소리를 듣고 예배당으로 발걸음 옮겼습니다. 아무도 없고 전도사님 혼자 냉골에 앉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얼거리는 소리에 궁금증이 생겨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니 자기 이름을 부르며 예수 믿고 영생을 얻어 천국가게 해달며 눈물을 흐리며 기도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하고 그 시골에 근사한 예배당을 건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땅을 부쳐 먹는 모든 소작들에게 교회 나올 것을 강조하니 온 동내 사람이 다 교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작인들의 불만은 갈수록 더해만 가고 그들의 삶은 더 고달프고 전도사 일 년을 못 견디고 떠나고 자기 말 안 들으면 교회 곳간을 닫아 버립니다. 배고프니까 못 견디고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갈라디아5장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본문의 아나니아 夫婦가 성령을 거슬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위장한 사탄의 공격에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물질을 바치지 않으면 체면과 교회안의 자기 권위가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거짓으로 외식을 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체면이나 권위를 벗겨 주는 곳이며 어린이로 만드는 곳이지 사람을 외식으로 위장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라고 한 것을 보면 사탄이 아나니아의 마음을 완전히 정복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기도는 외식하는 사람들의 기도인데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이 아니함은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9-14)

스스로 의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이라고 합니다. 성령 모독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본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에 감동감화의 역사를 모독하였기에 죽음 당했습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부여한 사명과 직분을 남용하거나 방해하거나 기만하는 것은 바로 본문의 아나니아 夫婦의 행위와 같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세력을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장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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