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들리는 소리

By 담임목사 on July 8, 2018

본문: 누가복음16장19-31절

제목: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

요즈음 한국에서 재벌들의 갑 질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니, 저런 것들이 어떻게 부자야 세상 참 불공평하지’ 구시렁구시렁 거려봅니다. 우리 호흡하며 사는 세상은 모순과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의 결과를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들어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말씀 하셨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하며 인생을 즐기며 살았지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 그 결과 부자가 죽어 지옥에 가서 그곳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문4절에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한 것을 보면 지옥은 뜨거운 곳임이 분명합니다. 지옥을 구약성서에는 ‘Sheol’이락 했고, 신약성서에는 ‘Hades’라고 했는데, 고통과 불붙은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지옥을 음부, 무저갱, 캄캄한 곳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가위 눌리거나 악몽을 꿀 때가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었으면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주 캄캄한 나락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식근 땀을 흐리며 깨어나 ‘아이 구! 다행이다’ 한 숨 쉬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문은 한 번 지옥에 가면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지옥에 가야 하는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요한계시록21장8절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고, 둘째, 로마서2장8-9절에 불의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했고,

셋째, 베드로후서2장4절 범죄한 천사들이라고 했고, 넷째, 요한계시록14장11절에 그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자들이라고 했고, 다섯째, 요한계시록19장20절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라고 했고, 여섯째, 마태복음10장15절에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사악한 자들이 끝없이 고통을 당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우선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자신의 정욕대로 살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자가 지옥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겁고 고통스러운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고 지옥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자는 설마 지옥이 있을까 의심하며 제멋대로 살다가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세상이 모순과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믿는 성도들 가운데도 설마 지옥이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살면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본문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우리에게는 주는 교훈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 모두는 다 죽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大門 밖 거지 나사로가 시름시름 아프더니 의원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좋은 약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부자도 어느 날 병들어 유명한 의원, 몸에 좋다는 온갖 보약에 이런저런 약을 다 써보았지만 병이 더 악화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가마니에 둘둘 말아 뒤 산에 버렸습니다.

부자는 웅장한 장례식을 하고 당시 가장 좋다는 명당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둘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임하는 것으로 인류역사상 단 한 사람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시간이나 순서에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밤새안녕이라고 엊저녁까지 말짱하던 사람이 아침에 죽었다는 소식이 오고, 건강에 좋다고 새벽 운동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 몸에 좋다는 보약 먹고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 양기에 좋다고 뱀탕 먹다가 뱀독으로 즉사하는 사람,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벌벌 사연을 남기고 결국 우리 모두도 죽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거짓 나사로처럼 남의 집 대문 밖에서 동냥하다 병들어 죽느냐, 부자처럼 방탕하게 살다가 죽으냐, 아니면 뜻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다가 죽느냐, 헛된 일을 미쳐 날 뛰다 죽느냐 이것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죽기는 원하십니까?

2. 지옥과 천국 중 한 군데로만 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 부자가 죽어 심판의 자리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보니 자기 집 대문 앞에서 구걸하면 살던 거지 나사로가 천국이라고 써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가워서 뛰어가며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고 들어갑니다. 부자가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 거지 나사로를 삼십 여년 먹어 살렸는데, 나야 천국은 아니더라고 근처에는 가겠지.

근처는 준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천국과 지옥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예수 안 믿고 구원 받지 못했으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심판에는 적당한 타협이나 절충은 없습니다. 본문에서 지옥에 간 부자가 자신의 입으로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는데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24절에 부자는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했고, “거지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는 “유황불 붙는 못”이라고 했고, 21장8절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23절에 보면 “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라고 했고, 24절에는 “고민하나이다.”라고 했고, 28절에는 “고통 받은 곳”이라고 했고, 계시록20장10절에는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지옥에는 기쁨이나 소망 그리고 찬양이 없고 후회와 절망과 고통만 있는데, 그것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먹이를 찾던 물고기 두 마리가 먹음직해 보이는 지렁이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에게 말했습니다. “저 지렁이가 보이지? 저건 낚시 바늘에 꿰어 있는 거야. 낚시 바늘은 낚싯줄 끝에 달려있지. 그리고 낚싯줄은 낚싯대에 연결되어 있고 그 낚싯대는 사람이 쥐고 있어. 우리가 저 지렁이를 삼키면, 우리 입이 바늘에 걸려 결국에는 프라이팬에 얹혀 지는 신세가 되고 마는 거야.” 그러자 다른 물고기가 말했다.

“하하하! 어릴 때 할머니가 자주 해 주시던 바로 그 이야기구나. 나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아. 프라이팬에 얹혀 졌다가 다시 물속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밝혀 준 이가 어디 있어? 자네가 저 지렁이를 먹지 않겠다면 내가 먹어치우겠네.” 그러더니 그 물고기는 지렁이를 삼키고 프라이팬에 얹혀 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러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간이 지옥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옥에 갔다 와서 지옥에 대해 증언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은 가볍게 넘기지 말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영원히 행복하고 아름다운 영원이냐 아니면 영원히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영원이야.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3. 어떻게 살았느냐가 그 결과를 결정합니다.

본문25절에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난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지 뭐’라고들 합니다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죽은 순간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가큼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Billy Graham 목사는 ‘당신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큰 문제라는 뜻입니다. 눈 감으면 모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는 천국과 지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께서 오른편과 왼편으로 우리를 갈라놓으실 것입니다. 때문에 일생을 천국 갈 준비한 사람은 죽어 천국에 갈 것이고 지옥 갈 준비를 한 사람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본문27-28절에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지옥에서 고통 중에 생각한 것은 아직 살아있는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 대답을 본문2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오늘 이 자리가 아주 중요한 자리임이 틀님 없습니다. 지옥 간 부자도 형제들의 영혼 구원이 절실함을 깨닫고 지옥에 올 형제들을 안타까워했는데,

오늘 주일 날 주님 전에 예배드리는 우리들이 형제들의 구원 문제에 뒷짐 지고 구경만 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Ixion 왕은 불경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 벌로 그는 불 수레바퀴에 묶인 채 평생을 그 자리에서 맴도는 운명이 되지요. 이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전진이 없다면,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여 끝없이 회전하는 지옥의 인생이 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고함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첫째,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 와 있어서, 둘째, 꼭 만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어서. 셋째, 나 같은 죄인이 거기 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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