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말씀

By 담임목사 on December 10, 2017

본문: 시편119편41-48절

제목: 진리의 말씀

眞理, 영어로는 truth의 사전적 의미는 ‘참된 도리’이며, 사실이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제, 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사실 혹은 참된 이치나 법칙을 뜻합니다. 진리는 철학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이 항상 진리가 아닌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2700년 전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였고 바다 끝에 가면 떨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 당시 그것이 진리며 참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정확한 뜻은 사람의 생각, 지식, 견해 등에 상관없이 언제나 변함없는 정확한 사실을 진리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Protagoras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며 진리의 상대주의를 주장했고, 이에 대항하여 Platon는 현상은 현상 밖에 있는 불변하는 이데아론(Theory of ideas)을 주장했고, Descartes는 ‘사고하는 나’가 가장 확실한 진리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고, 진화론으로 인해 불편한 진리가 만연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실용주의가 독일의 철학자 Nietzsche는 ‘신은 죽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한 마디로 정리를 하면 眞理는 인류의 발달에 따른 文明의 사회 속에서 변화할 수 밖 에 없고, 사람의 생각, 지식 견해 등에 상관없이 변함없는 정확한 진리는 존재할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43절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인간문명 밖에 진리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말씀은 성경을 가리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사실 혹은 참된 이치나 법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성경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사회가 갖는 문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진리로 알고 ‘신은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오직 주님만이 진리요 생명이니 주의 구원이 자기에게 임하게 해달라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를 합니다. 이것은 삶의 어떤 역경이나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서 가장 적절한 위로와 교훈을 찾아 참된 기쁨과 평안을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지 진리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 환경과 미래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인생의 길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는가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려줍니다.

주석가 Matthew Henry는 인간이 지혜로울 수 있는 길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기회를 놓치지 말라. 둘째, 늘 배우는 자세를 가져라. 셋째. 인내를 가져라.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와 끈기가 꼭 필요하다.”고 했고, Carlyle은 “인간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행운과 행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없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하던 모습을 기억납니다. 그 시절에는 군것질거리도 변변하지 않고 하루 세끼 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찬타박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반찬이 주류를 이루고 가을에는 신선한 채소가 주류를 이루고 겨울에는 김장김치가 유일한 먹을거리였습니다.

봄이 되면 보리고래라고 해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던 시절이었지요. 유일한 반찬이 묵은 김치와 시래기였지요. 시어 빠진 김치로 찌개를 끊이면 온 동내에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온 종일 뛰어 놀다가 ‘밥 먹어라.’는 엄마 부르는 소리가 동내에 메아리치면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밥상에 앉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그릇 담긴 밥 냄새가 허기진 배를 요동치게 하고, 묵은 지로 끊인 찌개는 견딜 수 없는 냄새로 코를 진동하게 하지요. 그런데 밥상 문화란 것이 있어 아버지가 밥상에 앉으셔 첫 수저를 떠야 하고, 특별히 우리는 식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밥상 문화에 삶의 지혜가 숨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바로 인내의 지혜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양심이나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훈계를 들은 기억도 별로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이부자리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성경을 돌려가며 읽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게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돌려가며 읽고 그리고 삼세새끼 식사기도하고, 그때는 지겹도록 싫었는데, 지금 뒤돌아보면 그 때에 구원의 지혜를 배웠고, 인생살이 험한 풍파를 이길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 디모데후서3장15절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고, 골로새서2장3절에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안에는’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즉 성경말씀 안이라는 뜻입니다.

막내 동생이 18세가 되던 해부터 이 가정문화는 우리 집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외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주일 날 교회만 가면 됩니다. 그 후로는 집은 그냥 쉬는 곳, 그래서 늘 그리운 곳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하나님의 주시는 구원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며 참 된 것이지만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장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했고, 야고보서1장5절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만이 가장 분명하고 정확한 진리이고 이 말씀을 통해서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부여잡고 하늘의 보좌를 얻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합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가는 세월을 멈춰 세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 같이 사람이 변하는 참으로 힘들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누가복음24장32절 이하에 보면 엠마오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고향을 떠나며 아무리 못해도 이 마을 현감은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으스대며 떠났는데, 자신들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오갈 곳이 없어진 두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며 ‘야! 창피해서 어떻게 하냐. 이 꼴로’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찾아 가셔서 엠마오 길에 동행하고 계시는데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27절에 보면 “이때에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했고, 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3장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고, 17절에는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항상 배우는 자세로 겸손하게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세상 풍파에 속해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밥상에서 어른 존경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異口同聲으로 자식을 희생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면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떠들어 냅니다.

공부 잘하고 돈만 많이 벌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아우성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위선과 비 진리만을 배워나가지 결단코 구원도 없으며 지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배워 나갈 때 개인의 향상과 가정의 평화와 사회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이에 ‘나는 많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나의 삶을 변화시키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지런히 성경을 읽어 마음의 변화뿐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자신의 삶이 변화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옛 습관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시면서 진리의 말씀을 성령과 함께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으므로 눈이 밝아져 진리를 알게 되고 빛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4장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고 13절에는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시기를 원하십니까?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나기 위하여 오늘 본문의 다윗의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는 고백처럼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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