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감사

By 담임목사 on November 19, 2017

본문: 시편50편14-15절

제목: 참된 감사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와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정착한 순례자들이 새로운 세상에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감사절을 폐지하였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부와 북부가 ‘감사절 날에 적과 싸움을 그만 두자’는 한 여류 시인의 청을 받아드려 11월 네 번째 목요일을 ‘국가적인 감사절’로 선언하였고, 1941년 미국 의회가 정식으로 재정하여 종교에 상관없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선포한 기도문은 구구절절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귀결되어있습니다. 당시 지도자 월리엄 브래드포오드는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금년에 우리에게 옥수수와 강낭콩, 완두콩과 과일 및 정원 채소를 풍성히 내려 주셨고 또한 사냥감이 풍부한 살림과 날고기와 조개가 있는 바다를 주셨도다. 또한 야만족의 밥이 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고,

흑사병과 각종 질병에서도 우리의 양심의 명령에 따라서 그 분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주셨도다. 그러므로 이제 그대들의 행정관인 나는 그대들 순례자들, 모두 즉 그대들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그대들의 회합처에 모이고 거기서 그대들이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 모든 축복을 인하여 그대들의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을 선포하노라”

성경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우리 속에는 여러 가지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기뻐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즐거움 마음, 미워하는 마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데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왜일까요? 끝없는 욕망과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현승의 감사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감사는 곧 믿음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모른다. 감사는 반드시 얻은 후에 하지 않는다. 감사는 잃었을 때에도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는 곧 사랑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알지 못한다. 사람은 받는 것만이 아닌 사랑은 오히려 드리고 바친다. 몸에 지니인 가장 소중한 것으로 과부는 엽전 한 푼으로 부자는 부자의 많은 보석으로 그리고 나는 나의 서툴고 무딘 눌변의 시로’

저는 무엇으로 감사할까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택정하시고 부르신 존귀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보다 귀한, 들풀보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야 나의 삶의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임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주신 축복과 은혜를 감사드리면 세 사람의 감사를 떠올렸습니다.

  1. 요나의 감사입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요나가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비뽑기에 요나가 걸려 푸른 바다 한 가운데 던짐을 당하는 시련에 부딪쳤습니다. 바다에 빠진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살아 나오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어떤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까? ‘이렇게 잠시라도 살아있을 줄 알았더라면 가사 예물을 드렸다면 좋은 것을 가져온 것이 없사오니 입술로라도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래 뱃속 같이 깊은 웅덩이에 빠졌습니까? 살아있음에 감사의 찬양을 부르기 바랍니다.

2. 하박국의 감사입니다.

하박국3장16-절 이하에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하박국이 집에 들어와 보니 자신의 모든 소유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난감하여 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박국은 세상을 다 잃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한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과 의로운 섭리를 믿고 따르는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박국의 삶에서 그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계획에 고개를 숙이고 장차 받을 생명의 면류관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을 감수하고, 하나님에 대한 영원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사도바울의 감사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성의 두아디아에서 전도를 하다가 귀신 들려 점치는 여자를 만나 그 여자에게 들어 있는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더 이상 귀신들린 여인이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어 돈을 벌 수 없게 된 주인이 바울 일생을 고발하여 웃을 찢기고 사십대 매를 맞고 손에 고리를 채우고, 발에는 착고를 채우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옥에서 한 밤중에 찬송을 부르는 감사의 기도가 지진을 일으켜 착고가 풀리고 쇠고랑이 끊어지고 옥문이 열리고 간구가 회개하고 유럽에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기사가 일어났습니다. 본문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이 필요해서 인간에게 희생 제사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희생 제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올바른 예배 자세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사 드리는 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심령 자세를 가지고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옛날 어느 화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기로 결심하고 화구를 준비해서 나섰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개선장군이 말을 타고 승리의 입성하는 장면을 그려보았고 또 젊은 남녀가 꿈에 부풀어 결혼식을 하는 장면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농부들이 밭에서 추수하는 광경을 그렸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의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을 위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한 사랑하는 아내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손잡고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때 그 화가가 그 모습을 그렸고 그제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다고 만족했다고 합니다. 참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남의 행복에 감사하고, 남의 아픔에 동참하고 역경 중에 감사하는 것이 참된 감사이며 참된 예배입니다. 깊은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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