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는 자의 복

By 담임목사 on October 14, 2018

본문: 요한계시록1장19-20절

제목: 동참하는 자의 복

본문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을 한 사도요한이 말년을 밧모아 섬에 유배되어 묵시적으로 쓴 예언의 말씀입니다. 19절에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본문2절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사도요한에게 보내 미래, 즉 장차 일어날 일들을 보게 하시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셔서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전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계시록이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계시를 받아 기록했기 때문에 논쟁할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9절에 보면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아 하는 섬에 있었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형제란 무엇일까요? 어느 깊은 산골마을에 나무꾼이 아들을 4형제를 두었습니다. 큰 아들부터 아버지를 따라 나무꾼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들 모두 나무꾼이 되었고 장가들어 살림을 나게 되었습니다. 돌을 다듬어 만든 도끼로 나무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큰 아들이 열심히 돈을 모아 먼 도시지 장에 나가 철로 만든 도끼를 사왔습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 이상 나무를 합니다. 이에 동생들이 앞 다투어 형 쉬는 시간에 도끼를 빌려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보물처럼 아끼며 허리춤에 도끼를 차고 다니며 빌려주지를 않습니다,

이에 동생들도 열심히 돈을 모아 장에 나가 도끼를 사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가 강가에서 나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노련한 큰형이 실수로 도끼를 강물에 빠뜨려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자, 둘째 동생에게 도끼 좀 빌려 쓰자고 하자 ‘형님 도끼를 안 빌려 주고 내 도끼는 빌려달라고요 어림도 없습니다.’합니다.

큰형은 분한 마음에 셋째 동생에게 도끼를 빌려달라고 갔습니다. 둘째동생은 ‘형이 간절하게 부탁을 하니 빌려주긴 하겠지만 형이 남의 도끼 빌려 쓸 염치는 있소?’비아냥거리며 핀잔을 줍니다. 큰형은 무안하고 부끄러워 도끼를 빌리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고심 끝에 막내 동생에게 갔습니다. 막내는 익히 큰형이 도끼를 강물에 빠뜨렸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괴로워하며 오는 큰 형을 보자 ‘형님 도끼를 강물에 빠뜨렸다고요? 여기 제 도끼를 갖다가 쓰시지요.’ 그때 큰 형은 막내 동생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아, 우리는 형제다’며 눈물겨워 합니다.

형제란 무엇입니까? 이해 타산적인 사이가 아니고, 경우와 시시 비를 가리는 사이도 아니고, 즐거우나 괴로우나 함께 나누고 기쁨을 같이 하는 사이가 형제인 것입니다. 한 모태에서 나왔다고 형제가 아닙니다, 한 아버지의 자손이라고 다 형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17장17절에 “형제가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더 친밀하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12장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면서 이것이 바로 형제애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혈통을 타고 낫다고 해도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지 못하면 남남이지 형제가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과 애서는 쌍둥이 형제이었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로 살아서 오늘까지 그 다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요나단은 한 핏줄에서 나온 형제는 아니지만 서로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친 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요 자매이어야 하고, 또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동참이란 ‘어떤 모임이나 일에 함께 참가함.’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짝이 된다는 것이고, 멍에를 같이 메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10장에 보면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죽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 옆을 지나가던 제사장이 못 본체 지나가고 뒤이어 길 가던 레위인도 그냥 지나가고 마침 그 길로 지나던 사마리아 사람이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주막 주인에게 부탁을 가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혼자만 잘 살아 보겠다고 남이야 죽든 말든, 남이야 고생하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피해 다닐 뿐 남이 당하는 고통에는 아는 채도 않습니다. 저 사람이 왜 울고 있지, 저 사람이 왜 슬퍼하지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사정이 바뀌어 내가 역경을 만나고, 자기 자신이 곤경에 빠지고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고난을 남의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남의 아픔을 남의 아픔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남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합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것은 서로의 재능을 서로를 위하여 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재능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냥 따지지 말고 남을 위하여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받을 복이 무엇입니까? 계시록1장 10절에 “주의 말에 내가 성경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했고, 12절에는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라고 했습니다.

가슴에는 금띠, 발에는 끌리는 옷, 눈은 불꽃같고, 그 음성은 많은 폭포소리와 같고, 오른 손에는 일곱 별,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태양 빛보다 더 힘찬 광채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리는데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아,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도요한은 거기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영광의 주를 목격하고, 자기의 사명을 인식하고, 주 예수의 음성까지 듣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고난과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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