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선택

By 담임목사 on July 26, 2020

본문: 누가복음10장36-42절
제목: 최상의 선택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을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심방을 가셨을 때 일어난 일을 본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손님이 오면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禮義인데 여간 번잡스런 일이 아닙니다. 자매의 집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왔기에 많은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였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부엌에서 열심히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리아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 찾아보니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집중해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은근히 화가 치밀려 올라 얼굴이 달아오른 마르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합니다.

예수님께 “주여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잔득 화가 난 어투로 抗議하듯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하십니다.

언젠가 노회에서 장로고시를 보는데 한 집사님이 감독하고 있는 저에게 ‘목사님, 저는 지난 二十년 동안 안내위원으로 봉사하다보니 항상 사도신경을 고백한 후에 들어가다 보니 사도신경을 모릅니다.’ 사도신경을 쓰라는 시험지를 보고 한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주기도문은 외우고 계십니까?’ 물었습니다.

집사님 ‘예배 끝자락에 친교실 안내로 나가 주기도문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보는 듯해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외워 오시면 합격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간 후 이력서를 보니 박사학위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30분 만에 들어왔습니다.

철자법 하나 틀리지 않고 정답을 썼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놓치기 쉬운 일들, 그것이 장차 우리들의 장래를 가름하는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數十년 동안 교회를 드나들고도 진정으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올리는 말씀이 아닌 가 생각하며 마리아의 행동을 통해 최상의 선택이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리아는 절실한 것을 선택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자매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손님 대접할 음식들을 정성스럽게 장만하고 있고 마리아는 주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고하는 마르다보다는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더 좋은 편을 택했으니 결코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마르다가 땀을 흘리고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좋은 일이고 더욱 더 예수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며 더욱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교훈해줍니다. 우리들도 이런 상황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것과 친교와 봉사하는 일로 의견이 나누입니다.

저의 목회 경험으로 보면 밥을 먹는 사람들은 밥맛에 따라 마음도 변하여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먹는 사람들은 결코 떠나거나 변하거나 배반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먼저 말씀을 듣고 봉사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예수를 믿고 구원 얻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세상일에 성공했다면 한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마리아처럼 말씀 듣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 발아래서 말씀을 듣고 있던 마리아는 은혜 충만한 나머지 시집갈 밑천으로 준비해 둔 값진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아래 부으니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가룟유다가 한 마디 합니다. 아니 그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지 왜 낭비를 하느냐고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일렀으되 온 천하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저를 기념하리라.”고 칭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新舊約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집을 빌려준 사람, 온 재산을 헌납한 사람.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무덤까지 예수님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만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마리아가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다는 것은 마음까지도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했기 때문에 가능한 헌신입니다. 마리아의 봉사와 헌신은 남 몰래 드러내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숨어 드리는 봉사와 헌신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옥합을 아낌없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마리아는 최고의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자면 예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더 좋은 선택을 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선택이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안이라 그 일은 세상일이기 때문에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항의 아닌 항의를 한 것을 보면 마르다는 시험에 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선택한 일은 성스러운 일이므로 시험에 들거나 타락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시험에 들고 죄의 길로 빠지기 쉬운데 이때 우리가 올바로 예수님을 섬길 수 없게 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선택을 요구할 때가 아주 자주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망설이게 하는 것이 이민 三十 午年차 장로님 아들이 이민 1년차 성도의 아들을 때리는 장면을 보았을 때입니다. 못 본체 지나치는 것이 가장 말썽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일에 어른이 간섭하는 것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요.

분명히 불러 잘 못한 행동을 지적하고 나무라는 것이 옮는 일이지만 그러면 그 다음 주일 당회가 힘들어 집니다. 집을 돌아가는 차안에서 아이는 아빠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일을 계속하게 되면 결코 교회가 부흥하지 못합니다. 강자 편에 서서 그냥 대충 눈감고 넘어가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할 존재들입니다. 그 결과는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오늘 엄한 곳에 서서 사도신경도 주기도문도 외우기 못하고 조그마한 이익을 때문에 불의에 대하여 진리와 진실 앞에 눈을 감아 버리기 일쑤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世上事 모든 일을 일관성 있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꾸준히 변함없이 예수님의 일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결코 빼앗기지 않을 좋은 선택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도 마리아처럼 최선의 선택을 하여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살펴 헌신적으로 믿고 따르며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에 마리아처럼 가장 절실하고 좋은 것을 택하여 훗날 우리 주님 앞에 서는 날 너는 최상의 선택하여 충성하였노라 인정과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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