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된 새해

By 담임목사 on January 19, 2020

본문: 창세기27장25-29절
제목: 축복된 새해

希望과 所願을 마음에 가득 담고 시작한 새해가 두 主日이 지나고 세 번째 主日禮拜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새해 벽두에 좋은 것을 소원으로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져 복 받기를 희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벌써 한 숨 소리가 공기를 가릅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 더욱 좋은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聖經을 읽으며 가장 큰 의문을 가지게 하는 내용입니다. 形而上學的 哲學으로 생각하면 인륜을 저버린 범죄자입니다. 팔 죽 한 그릇에 장가의 명분을 빼앗더니,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형 애서를 기만하고 나이 들어 늙은 아버지를 속이고 長子의 축복을 가로챈 파렴치한 야곱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느냐 것입니다.

1. 복 받는 비결

첫째, 간절함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時間 人間事 人倫과 哲學的 思考는 뒤로하고 야곱이 받은 복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가족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祭壇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가정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애서는 外形的으로 사냥을 좋아해서 늘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그러나보니 祭壇을 쌓은 일, 즉 가정예배를 드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밖에 나가 사냥하고 즐겁게 먹고 노는 일에만 온갖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반대로 집안에서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어머니 리브라는 돕고 아버지 이삭을 살피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 이삭을 도와 제단 쌓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聖經은 원하는 자가 받으며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소원도 없고 목적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복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자의 실상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절실한 소원이 있는 사람에는 용기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소원을 가진 사람을 큰 사람이라 하고 작은 소원을 가진 사람을 작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야곱은 큰 소원을 가진 사람이었고 애서는 작은 소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은 그 사람의 생활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소원을 가진 애서는 잠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팔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큰 소원을 가지고 있던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자 기회를 보고 있다가 기회가 오자 순간적으로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형 애서에게서 장자의 명문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둘째, 효도해야 합니다. 야곱이 팔 죽 한 그릇에 형 애서에게서 장자의 명문을 빼앗았으나 그것으로 야곱에게 복이 임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이삭의 최종적인 승인 필요했습니다. 야곱은 바로 아버지 이삭의 승인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아버지에게 효도를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反論을 제기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야곱은 늘 아버지 겉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무엇을 좋아하며 입맛은 어떻고 등,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아버지 이삭을 살피면서 별미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별미는 맛 좋은 향기로운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식물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를 상징합니다. 창세기6장21절에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고 했고, 에스겔4장16절에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식물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저주도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42편3절에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고 했고, 잠언15장15절에는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식물은 행복과 기쁨의 상징이라는 말입니다.

이 별미를 이삭이 좋아했습니다. 바로 이 별미를 먹고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면 복 받는 비결이 무엇이냐? 그것은 한 마디로 복을 주시는 자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복 주시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별미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4장3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우리 주님께서 원하는 별미는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4장18절에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입니다. 창세기27장26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 맞추라.”고 했습니다.

입 맞춘다는 것은 사랑과 존경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경배 혹은 예배의 표인 것입니다. 야곱이 받은 복의 비결은 오늘 날 우리들의 복 받는 비결입니다. 야곱이 받은 복을 우리들도 받도록 전도하고 별미를 드리고 입 맞추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야곱이 받은 축복

첫째, 야곱은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본문28절에 “여호와의 복 주신 밭에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아들 야곱에게 가능한 모든 축복을 다 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여호와의 복 주신 밭에 향취로다’는 말씀과 같이 기름진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땅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삶의 터전이요 곡식을 심어 가꾸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땅이 기름짐으로 많은 수확과 결실을 맺는 복된 땅을 축복받았습니다. 이 기업의 축복이요 생활의 복입니다.

오래전에 放映되었던 史劇들을 보면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쟁을 치우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이 땅이 얼마나 소중하였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가는 곳마다 沃土를 만나고 지혜로 그 땅에서 번성하여 富者가 되었습니다.

둘째, 야곱은 풍성한 양식과 포도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아버지 이삭의 축복기도는 하나도 빠짐없이 야곱에게 임했습니다. 시편104편15절에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고 했습니다.

人間事 먹고사는 일만큼 중하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배고픈데 장사 없다’고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 안 넘을 사람 없다고들 합니다. 불과 수년전에만 해도 많은 한국 사람들의 소원을 물으면 ‘하얀 쌀밥에 고기 국 한 번 먹고 죽은 것이다’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골 경로당에 가서 老人들에게 소원을 물으면 ‘죽기 전에 해외여행 가는 것이다.’고들 합니다.

隔世之感을 느낍니다. 저도 個人的으로 은퇴하면 뭣하고 지내지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생각해 보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큰 도시로 나가면 하루 두 끼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먹을 수 있고 이런저런 모임들이 있어 소일할 수 있는데 집값이 엄청나고 세금도 비싸고 그래서 엄두도 못 내고 시골에 있자니 소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문29절에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政治的으로 축복을 받아 세상 어느 곳에 가든지 너에게 복을 내리겠다는 곳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안심을 합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 주님께서 저와 동행해 주시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줄로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이야 주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겠지만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받은 야곱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형애서가 죽이려 하여 야반도주하여 나그네 신세가 되었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을 살아야 했고 그토록 사랑한 어머니 리브가의 임종도 못 보고 아버지 장사도 못 지냈습니다.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을 고비를 넘기도 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오랜 가뭄으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온 식솔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은 400년 동안이나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저도 지나온 인생을 뒤돌아보면 시련과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저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셔서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New york Times에 교황 John paul 2세가 발표한 “구원에 이르는 고통”이란 제목의 공한을 보도했습니다. 교황 자신이 어려서부터 많은 고통 속에서 싸우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 속에는 신비한 치료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괴로움은 두려워할 것도 아니고 피할 것도 아닙니다. 고통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필요한 신의 도구입니다.” 즉 괴로움을 저주로 보지 않고 행복에 이르는 필요한 축복으로 보며 고통 자체 속에 신비한 치료제가 있기 때문에 고통은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힘들고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내고 또 다시 다가온 한 해가 걱정스럽고 두렵다고 하여도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며 그 복은 승리의 복이요 믿음의 복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No Response to “축복된 새해”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