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뿌리

By 담임목사 on November 25, 2018

본문: 에베소서5장20-21절

제목: 축복의 뿌리

신약성서 에베소서는 주로 그리스도인들, 즉 우리 믿는 성도들의 삶의 자세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를 읽다가 생각을 멈추게 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엡6:5)라는 구절입니다.

영어로 ‘Servants’라고 변역한 이 한 구절 때문에 기독교는 오랫동안 신학적 논쟁을 해왔습니다. 특히 미국 남쪽의 교회와 북쪽의 교회들 사이의 논쟁은 노예제도의 찬반으로 이어져 결국은 남북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近來까지 이어졌던 논쟁은 남쪽교회들이 노예제도를 인정한 사실을 사과하면서 종식되었습니다.

1977년 ABC 방송사가 제작하여 방영한 ‘Roots’라는 Drama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Roots’는 미국의 흑인작가인 Alex Haley가 저술한 소설로서, 그의 조상 쿤타 킨테에서 부터 Haley 자신에 이르기까지 7세대에 걸친 흑인 노예 가족사를 사회고발적인 시각에서 세심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책의 주인공 ‘쿤타 킨테라’는 16살 된 아이가 고향 Africa의 주푸레 마을에서 염소를 키우며 가족과 평화롭게 살던 중 백인 노예사냥꾼에게 잡혀 미국으로 끌러와 이리저리 팔리며 노예로 살아가는 모습을 대하며 애절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울분을 토하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또 한 번의 저무는 해를 서산에 떠나보내면서 異域萬里 고향을 떠나 移民자로 살아온 세월을 나의 7세대의 후손이 뭐라고 책에 담아낼까? 저는 한 줄 ‘축복의 뿌리’라고 나를 기억하고 기록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축복의 뿌리’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昨年에 會議 차 한국을 방문하여 親分있는 목사님을 만났는데,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제가 써놓은 ‘Two number one’이라는 Column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며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네며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하고 좋은데 가서 식사 한 번하시라고 넣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개척교회 목사님을 드렸습니다.

피를 흘려도 안 되고, 피를 토해도 안 되고, 피가 말라도 안 된다는 아주 작은 이민교회 목회자 父子의 Hamburger에 담긴 애환의 이야기를 글로 써놓은 것입니다. ‘축복이 무엇일까?’라는 정의와 가치를 생각하며 칠십의 문턱에서 내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보았습니다.

본문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범사’에는 時空을 초월한,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것. 바로 그 마음과 생각이 축복의 뿌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축복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축복의 가치는 오후 4시 이후에 99c에 sale하는 Mc Donald’s의 Hamburger Big Mac에 담긴 父子의 슬픈 사연, 즉 물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칠십의 문턱에서 내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많아 측량할 수 없었습니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첫째는 삼십년 넘게 목회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다른 교회 다니는 교인에게 우리 교회 한 번 와 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개척을 하면서도 우리 식구 세 명이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 중에도 다른 교회 성도를 전도해서 데리고 온 적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남의 양을 도둑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여깁니다. 이십 여전에 제가 이 교회에 시무할 때 김밥을 싸들고 일 년에 육만 mile 이상 뛰면서 전도했는데 남의 교회 교인집이나 사업장에 가 본적이 없습니다. 집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만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둘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헌금 명단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물질로 사람을 평가해 본일 없습니다. 빈부귀천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존귀하게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떠난 성도 가운데 우리교회를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 있습니다.

‘사람 차별한다.’ ‘돈 없는 사람은 직분을 안 준다’고, 저는 이런 비난에 대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기분과 환경에 따라서 사람에 대한 기억과 評價가 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경험한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저는 바로 이 정신과 마음 그리고 믿음과 고백이 한 알의 씨앗으로 뿌려져서 뿌리를 내리고 맺은 열매가 저의 후손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후손이 나를 ‘축복의 뿌리“라고 한 줄로 기록해 주기를 간절한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열매를 거두고자 하면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나 ‘콩 심은데 콩 나고 팔 심은데 팔 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우리 속담처럼 축복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축복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성경은 축복의 씨앗을 ‘감사’라고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통해 축복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축복의 씨앗이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의 은혜를 아는 감사입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생명의 구속이라는 엄청난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존재들입니다.

빚을 구별하지 못하는 색맹이 빚을 구별하는 Micro chip을 뇌에 심어 색을 인식하고 그것을 말로 뇌에 전달하여 색을 구별할 수 있다는 記事를 읽으며 인간의 문명이 어디까지 일까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인류가 하루하루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되어 가고 있지만 한 가지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는 생명입니다.

죽지 않고 한 세기 이상을 살아있다는 동물은 아직 없습니다. 결국 다 죽은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고유 영역이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천년 전에 유대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영생, 천국과 지옥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과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아, 내가 이렇게 하면 지옥에 가지’ 그래서 자신을 낮추고 자제하며 참아 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는 자의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믿음을 마음 밭에 뿌리라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지금 나는 Hamburger쯤이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형편입니다. 건강상 좋지 않다고 해서 일부러 안 먹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기도를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다 공급해 주셨습니다. 먹고 입고 마시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모든 문제를 다 살피시고 염려해 주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異口同聲으로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정면으로 물으면 시험 들까봐 웬만큼 믿고 신뢰하는 관계가 아니면 속으로 묻습니다. ‘그토록 염려하는 자식의 마음에 무엇을 뿌려 놓았냐고?’ 그 씨앗은 말로 뿌리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뿌리는 것입니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해라 하면 되는데 옆집 아들 녀석 이름을 대면서 ‘그 애보다 못하는 꼴을 나는 죽어도 못 본다.’하지요

더 나가 목사님께 전화 왔는데 그 날 기분에 따라 없다고 해라. 그렇게 뿌려 논 씨앗이 훗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염려, 걱정, 불만, 긴장 등 오늘 우리가 지고 있는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2.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감사입니다.

범사에 주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축복의 열매를 거두는 씨앗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 우리가 있어야할 곳, 자신의 일꾼을 세우는 것, 우리의 의견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회의를 하는 일도, 여론 수렴하는 일도 계획하는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의 모든 진행 과정을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주께서 창조하셨듯이 역사의 크고 작은 일부터 사사로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간하십니다.

때문에 범사에 주를 인정한다는 것은 주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처럼 주변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고 죄악에 빠져 있다고 하여도 주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여야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사람은 역사관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대다수의 믿는 성도들이 주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근거가 잘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이어야 하는데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하시자 즉시 일어나 길을 떠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지시한 땅을 벗어나면 환란이 임했습니다.

저마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성도들을 보면 사는 형편이 늘 그 모양입니다. 그러나 진득하게 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성도들을 보면 그래도 저마다 형편이 나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며 잘 견디어 가는 성도의 날마다 형편이 나아짐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만세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에 따라 되어 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직분과 사명이 사람의 생각이나 계획으로 되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축복의 열매를 거두기를 원하면 부지런히 순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노아 홍수 때 사람들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은 물속에 빠져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고 매를 자청했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영원불변의 법칙이 하나님의 법칙임을 증거 해 보인 사건이 노아 홍수입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저는 사울과 아들 압살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쫓아다닐 때 깊은 동굴 안에서 정적사울을 살려 보내고 자신 수하들에게 한 말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반란군은 다윗의 세 장군의 지휘 하에 있는 군사 앞에 무참하게 패하여 압살롬은 드디어 노새를 타고 도망치다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머리털이 걸려 몸이 공중에 매달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요압과 그 졸개들은 창으로 찔러 그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구출하도록 긴급 명령을 내렸으나,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듣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죽이려한 아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용서하고 용납하는 마음,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우리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릅니다. 축복은 그 밭에 이것을 위한 씨앗을 뿌린 사람만이 거둘 수 있는 열매입니다.

감사하는 생활, 감사가 넘치는 마음은 축복의 씨앗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삶 속에 넘치는 복을 채워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No Response to “축복의 뿌리”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