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얻는 비결

By 담임목사 on August 2, 2020

본문: 마태복음11장28-30절
제목: 평안을 얻는 비결

‘平安’ 英語로 ‘Peace’는 ‘무사히 잘 있음. 걱정이나 탈이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평안은 우리 모든 인류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平安한 인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호흡이 있는 동안 마지막 순간까지 온갖 근심과 걱정을 앉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地球 村의 인류는 政治的, 思想的, 經濟的, ideology로 인한 대립으로 단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고, 雪上加霜 自然災害로 인한 피해가 人類의 삶을 송두리째 餓死가고 있어 하루도 편할 날이 없고. 날로 더 해가는 Coronavirus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 때문에 문밖을 드나드는 것조차 平安하게 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의 앉고 있는 짐들이 날이 갈수록 우리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 만 합니다. 본문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위기에 처한 우리 인생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꿈속에서 조차 벗어 버리지 못하고 지고 짐 때문에 신음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큰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는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이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을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은 누구든지 아무 조건 없이 예수로 나아가기만 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와야 만이 우리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앞에 나와 앉아 믿음을 자랑하면서도 마음에 평안이 없다고 아우성치며 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난 사실이 없다는 것인데, 이런 우리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이사야서29장13절에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고 책망하였고, 또한 요엘서2장12절에는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아마 이 위기의 事態가 끝나면 사라들은 두 주류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더 멀리 예수를 떠나는 사람과 예수께 더 가까이 나오는 사람으로 분명하게 갈라질 것입니다. 성수주일을 안 해도 아무 일 없네.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를 안 들려도 무덤덤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인하여 예수 앞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날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英國을 여행하는 관광객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 런던의 Westminster사원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있는데, 리빙스턴을 비롯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그리고 음악가, 건축가, 시인, 정치가, 귀족 등 영국의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나 비석들이 그 사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박물관입니다. 그러나 Westminster사원은 본래는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곳이 이제는 영국 왕이 취임하는 곳으로, 유명 인사들의 묘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국의 역사를 보존한다든지 역사를 계승한다든지 또 관람객들에게 영국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원 안에 들어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느끼고 나올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자기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전 안에서 가장 중요한 분, 홀로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는 무관심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는 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빈 마음으로 예수 앞에 나와야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발걸음을 열심히 예수 돌이켜 복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의 멍에를 매어야 합니다.

본문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멍에는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소 두 마디가 하나의 멍에를 매고 쟁기를 끌게 했습니다.

멍에를 메우기 전에 두 소를 싸움 붙어 이긴 소를 인도자로 삼아 보조를 맞추게 했다고 합니다. 본문 ‘멍에를 메고’는 많은 영적 교훈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할 때만 그 분의 멍에를 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의 인도에 함께 보조를 맞추어 순복할 때만 우리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말씀에 순종하여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은 다른 곳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멍에를 메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온전히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께 나가지 못하고 예수의 겸손을 배우지 못하고 예수의 멍에를 메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동화책에 ‘왕과 청소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이 잔치를 베풀고 초청장을 냈습니다.

이 날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중 한 명을 뽑아서 왕과 왕후 사이에 앉게 하고 푸짐한 선물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초청한 손님들이 궁전에 도착하자 왕의 신하들은 손님들의 손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이 날 왕의 옆자리에 앉도록 당선된 사람은 궁전의 청소부 할머니였습니다.

평생 힘든 노동에 종사한 청소부 할머니의 손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당신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 “내 손과 발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알아보게 하려면 ‘내 얼굴을 보라’고 해야 하지만, 손과 발을 보라는 말씀에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예수의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달렸던 못 자국이 있으며, 손과 발을 보라는 예수의 의도는 그 못 자국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우리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평안을 얻기 위하여 멍에를 메고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하겠습니다. 바로 그곳에 진정한 민족과 기쁨이 있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예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본문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숨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의 겸손을 배워야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이라는 말의 의미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너희가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평안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인데 성경에 교만을 패망의 선봉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패망하지 않고 평안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예수’라고 불리운 슈바이처 박사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랍바네대 병원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돈이 부족하여 모금 운동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모금 차 그의 고향에 돌아왔는데, 고향 역에는 그를 영접하려는 많은 친척친지와 동료들이 모여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으레 1등 칸이나, 2등 칸에서 나올 줄 알고 그 앞에 모여 있었는데, 박사는 맨 뒤쪽인 3등 칸에서 나오고 있질 않는가! 영접 객들이 달려가 얼싸 안으면서, “어째서 3등 칸에 타셨습니까?” 하고 원망 조로 물었다. 그러자 박사는 비시시 웃으면서, “4등 칸이 있어야지요.”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에 정원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 풀, 꽃 하나하나를 정성으로 가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아침에 정원을 나가 보니 모든 나무들이 시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문 옆에 서 있는 떡갈나무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떡갈나무야, 무슨 일이 있었니? 도대체 왜 다들 시들어 있지?” “나무들이 서로 자기가 다른 나무보다 못하다고 실망하고 있어요. 소나무는 자신이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포도나무는 복숭아나무처럼 똑바로 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낙담하고 있습니다. 또 제라늄은 라일락처럼 날씬하지도 못하고, 향기도 없다고 불평입니다.”

그런데 모두 시들어 있는 중에도 유독 생기 있고 아름다운 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꽃은 바로 팬지(Heart-peace)였습니다. 왕은 그 꽃에게 물었습니다. “팬지야, 다들 슬픔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데 너는 작은 꽃이지만 꿋꿋하게 자라는 것을 보니 짐의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네, 고맙습니다. 저는 원래 볼품이 없는 꽃이잖아요, 하지만 왕께서 떡갈나무나 소나무나 복숭아나무 혹은 라일락을 원하셨다면 저를 뽑아 버리고 그들을 심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왕께서 저를 심으신 것은 저를 보시면서 마음에 평화를 느끼기 위함이란 것도 알지요.

그래서 저는 왕께서 저를 보시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시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왕은 이후로 더욱 팬지꽃을 아끼고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참 평안을 얻으려면 곧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합니다.

정말 그 분은 하나님의 분체이시나 스스로 자기를 비어 종을 형체를 입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風前燈火와 같은 위기의 때에 참 평안을 누리고자 한다면 주님의 겸손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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