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By 담임목사 on June 30, 2019

본문: 시편46편1-11절
제목: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46편시의 작자가 누구인지, 또 어떤 배경에서 이 시가 써졌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려 했을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밤중에 그의 군대를 진멸한 것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할 말씀은 ‘땅이 변하든지, 산이 요동할지라도’입니다.

격심한 자연 이변을 묘사하고 있는데 지진이나 산사태, 해일, 홍수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첨단과학으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여름장마철이 되면 한 밤에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면 왠지 두렵고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니지요. 세상에는 우리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어릴 때 한 밤에 아무리 천둥번개가 치면 엄마가 계신 방으로 달려가면 너무 온화한 모습으로 안아 주시면서 ‘괜찮다’ 하시면 이내 마음이 평안해지던 모습이 아직도 눈가에 선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영혼이 평안을 얻을 진정한 피난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심을 교훈해 주는데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 인생이 곤고할 때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저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격정의 세월이었습니다. 빈 손들고 이억萬里 타향에 와서 반세기의 긴 세월동안 구비 구비 넘어야 했던 굴곡진 고난의 언덕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아슬아슬한 고비들, 이 고비를 때로는 재물로 넘으려고 해보고는, 때로는 지식으로 넘으려도 해보았지만 더 큰 위기와 격변에 부딪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고 순간순간마다 우리 주님은 나를 고치고, 위로하시고, 건지시고, 싸매시고, 높이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고라자손들이 본문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환난이나 위험에 닥쳤을 때 적절한 도움을 주시며 무너지지 않는 피난처가 되어 주셨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개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라는 찬송가를 지은 목사님은 아주 척박한 땅에 기후조차 고르지 않은 지방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성도들을 심방하여 복음으로 위로와 힘을 주였습니다.
어느 날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폭풍우를 만나 피할 곳을 찾다가 큰 바위를 발견하고 그 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바위 밑에서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느꼈습니다. 이때 “아! 여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품속이구나.’ 생각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시를 적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고난 중에 피할 바위가 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달픈 인생길에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만나면 포기하거나 세상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나오기 바랍니다. 그리고 살면서 곤고함을 만나면 어리석게 세상 재물이나 지식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의 짐이 가벼워지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영육간의 전쟁에서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지금 지구촌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의 위기 속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민족 간의 전쟁, 종교 간의 전쟁, 무역전쟁, 정보전쟁 그리고 우리가 호흡하며 숨 쉬는 공간에서도 삶을 위한 전쟁 둘러싸여 있어 어떤 사람들은 총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안심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의 전쟁입니다.

호국의 달을 맞이하여 625참전 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만큼 폐허가 된 땅의 발전상을 보고 기적이라고들 말합니다. 무기로 파괴하는 세상의 전쟁은 전쟁이 끝난 후에 복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전쟁으로 파괴된 우리 인간은 복구가 불가능하고 영원한 사망만을 남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게 하셨고 사도바울도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악의 세력에게서 보호해 주실 것을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영적인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자들이기에 매 순간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이란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의 핵무기로 인한 갈등 생각하면 한 숨만 나올 뿐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 서있는 韓半島, 우리 조국의 미래가 風前燈火와 같아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의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일까? 깊이 묵상해 봅니다.

미국이 낳은 문호이며, 재치 있게 유머를 구사하기로 유명했던 마크 Mark Twain의 ‘전쟁의 기도’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포탄이 저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피 반죽을 만들게 해 주시옵소서. 미소가 있었던 이 들판을 애국자들의 창백한 시체로 꽉 메워지게 해 주시옵소서. 무방비 상태인 과부들의 심장을 슬픔으로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주여, 그들의 희망을 고갈시켜 주시고 그들의 목숨을 시들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문제를 성경에서 답을 찾아 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장면, 외성과 내성으로 지어진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현대무기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여리고성이 뜻밖에 방법으로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냥 돌고 돌랐습니다. 또 하나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입니다. 누가 봐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입니다. 중무장한 골리앗은 다윗이 던진 작은 물맷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내가 능히 이기리라’는 믿음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영육간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야 하겠습니다.

3. 마지막 때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본문2-3절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마지막 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때 악한 세력들이 일어나 성도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종말이 때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목해야 구절이 33절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는 말씀과 46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간 나는 염소인가 양인가? 스스로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인생관처럼 허망하고 절망적인 것은 없습니다.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주장한 Charles Darwin은 그의 삶을 마치면서 솔직히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인생의 한 국면에만 관심을 집중시킨 나머지 시를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힘을 상실하였다. 심지어 자연 자체를 감상하는 힘을 대부분 상실하였습니다.”

가련한 Darwin처럼 인간의 의지와 인간의 이해력을 강조하고. 기독교의 죄의 교리와 구원의 교리를 조롱하던 사람이 삶을 마치면서 그가 물거품의 인생을 살았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들의 죽음은 무서운 일입니다.

방탕하게 살며 죄악에 빠져 폐결핵으로 죽어가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주 예수께서 어떻게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나를 말해주고,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처음에 이 젊은이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였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뻤고 평안했습니다. 며칠 후에 목사님이 다시 찾아 갔을 때 그 젊은이는 얼굴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젊은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슬픈 기색이오?”그 젊은이가 대답하였습니다. “저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걸압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그 젊은이는 쓸쓸히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내가 살날이 이제 다 끝나버렸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제가 주님께 무엇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 슬픔의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악한 세력이 공존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안심하고 피할 피난처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그 피난처를 삼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곤고할 때, 영적인 전쟁이 임할 때, 그리고 종말, 즉 죽음이 두려울 때에 우리의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기쁜 마음으로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심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셔야 하는데 이 은혜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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