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동풍

By 담임목사 on February 11, 2018

본문: 출애굽기10장12-20절

제목: 하나님의 동풍

‘메뚜기’하면 추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동내 언덕 너머 논두렁을 누비며 잡아 모닥불에 구워 먹던 기억이 지금도 눈가에 선합니다. 가난했던 시절 서민 아이들에 친구 같은 군것질거리였는데 얼마나 구수하고 고소하던지 아직도 생각하면 입맛이 당깁니다. 저도 검정고무신 신고 논두렁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던 童心 아련합니다.

본문에 이 메뚜기가 등장을 합니다. 일곱 번 재앙에도 강퍅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자 여덟 번째로 메뚜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메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아홉 개인데 본문의 메뚜기는 ‘아르뻬’로 ‘커다란 번식’이라는 意味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주복해야 구절은 “이런 메뚜기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14절) 말씀입니다. 이 말은 메뚜기 재앙 규모가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거대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본문15절에 “애굽 전역에 걸친 재앙‘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내가 득죄하였으니”라는 말씀입니다. ‘득죄’라는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고 죄 용서를 구했다는 뜻인데, 바로는 진정한 회개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인간의 교활함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이 사실은 메뚜기 재앙이 지난 후에도 그의 마음은 완악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려 자기의 욕망을 쫓아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한 손에 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설령 스스로 욕망을 자제할 수 있다 하여도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 합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사는 사람이 있고, 권력만 가지면 다 된다는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명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솔로몬은 인생을 허무하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불안과 죄의식이 늘 스스로를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1:18)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며 맞이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바로를 통해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나의 구주가 하나님 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로마서10장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고, 빌립보서2장11절에는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바로왕도 계속되는 재앙을 못 이겨 ‘너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느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바로의 회개는 진정성이 없는 재앙을 못 이겨 하나님을 자신의 구주로 시인하지 않고 맞지 못해 하는 고백이라 ‘너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바로 왕 역시 이런 認識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환난이나 고난 혹은 질병등 위기가 메뚜기 때처럼 덮어 와야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구주로 모시기보다는 의사나 능력자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진실하지 못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와 자비를 빌 때는 먼저 하나님이 자신 구주가 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2. 사죄의 기도는 스스로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한 때 유행하던 말 가운데 ‘기도 받으러 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영력이나 은사가 뛰어난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놓고 기도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들도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목사나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권장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회개기도는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해야 합니다. 바로와 같인 회개의 기도를 남에게 부탁해서는 용사 받을 수도 없지만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신의 죄를 남에 부탁해서 대신 기도함으로 용서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기도 받으러 간다.’는 말이 유행했던 것입니다.

舊約聖書 사무엘하12장13절에 보면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이 사실을 숨기고자 우리야를 최전방으로 보내 전투 중에 죽겠습니다.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진 일이라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이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를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아이가 죽자 20절에 보면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이상하게 생각한 신하들이 다윗에 묻습니다.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그러자 다윗이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 함이어니와”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다윗은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죽게 된 아이를 위하여 금식기도하고, 아이가 죽자 즉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순복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금식기도까지 했는데 왜 죽어야 합니까?’라는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고 그냥 평상시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사 모든 일에 메뚜기 때 같은 위기가 덮어 와도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다윗과 같이 자신의 모든 허물을 하나님께 자복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숨김없이 아뢰고 죄 사함 받아 해결하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남김없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본문에 바로의 문제는 눈앞에 다친 위기를 면하기 위해서만 진실하지 못한 회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적인 고통이 두려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만 이는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는 바로와 같은 외침에 불과하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다른 것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진노는 냉혹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그 은혜가 더 크고 놀랍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 가난한 피아니스트가 살았습니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한 뒤, 청중을 많이 모으기 위하여 당시 유명한 음악가였던 리스트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습니다. 물론 거짓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주회가 있기 전날, 리스트가 이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리스트가 마을에 왔을 때에 그는 그 앞으로 달려가서 사정을 합니다. “저는 원래 고아 출신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하면서 선생님의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이렇게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러자 리스트는 그에게 “당신은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자, 내 앞에서 한번 연주해보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는 벌벌 떨면서 리스트 앞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리스트는 연주를 들으면서 몇 군데를 바로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밝게 웃고 위로의 말을 합니다. “잠시라도 내가 당신을 가르쳤으니 이제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그리고 연주회에서 마지막 곡은 제자가 아닌 스승 리스트가 직접 연주를 하겠다고 소개하십시오.” 결국 회개함으로 더 큰 은혜를 얻은 그 피아니스트는 뒷날에 훌륭한 연주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할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는 결코 죄짓지 않겠다는 다짐과 고백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바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오늘 참 잘 나오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물로 나를 씻어 주시든지, 불로 나를 태워 주시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정결케 해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을 덮고 있는 동풍이 날아가고 서풍이 불어 환난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슬픔과 애곡이 변하여 소망되고 죽음과 지옥이 변하여 생명과 천국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축복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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