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By 담임목사 on November 26, 2017

본문: 신명기4장1-14절

제목: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궁상맞다’ ‘지금 때가 어느 때 인데’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와 살면서 ‘여기가 한국인지 알아’ 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文明과 文化의 변천과 발달에서 빚어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사춘기 때 짚신 신던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궁상맞다’ 했고 요즈음 아이들에게 검정고무신 꿰매 신던 이야기하면 ‘궁상맞다’고 합니다. 저녁밥은 아버지 들어오셔야 먹는다고 하면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라고 말대꾸를 합니다. 萬古의 眞理는 존재할 수 없다는 단편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보면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가감하지 말고,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후도 선지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강조되었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향해 백성들이 “우리가 아직도 노예로 살고 있는 줄 아느냐, 지금이 어느 때인데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리 먹을 때 말을 하느냐 ”며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요즈음도 십계명 말씀을 하며 성수주일해라, 십일조해라 하면 ‘율법적인 말 좀 그만해라 지금은 은혜시대다’라고들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전제사의 개혁이라는 명분아래 온갖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제단에 드려진 짐승을 되팔아 이익을 남기며 장사를 했습니다. 마태복음21장12절에 보면 예수님께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며 상인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5장17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 로라.”고 말씀하시면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심으로 말씀의 완벽성과 정확무오 함 그리고 가감금지에 영구불변의 원칙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분한 나머지 자기들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 결과는 레위기26장33절에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이 영구불변의 원칙이 가감 없이 정확무오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져 그 날 이후 지도상에서 이스라엘 땅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각국에 흩여져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가감하지 말고,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는 순종에 할 수 있을까를 본문을 중심살피고자 합니다.

  1. 배워서 지켜야 합니다.

본문1절 말씀에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무조건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배워서 알고 난 후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의술에 서투른 사람이 치료해 준다고 하다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능력이 없어서 제구실을 못하면서 함부로 하다가 큰일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미숙한 사람이 괜히 설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쳐 놓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심각하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신문에 보면 가큼 안수기도 받다가 죽었다. 안찰하다가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를 봅니다. 대가는 어깨 너머로 보고 어설프게 하다가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지옥 불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먼 곳에서 감사 인사를 보내온 성도들이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그들이 저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들에게 제가 대단한 도움을 주거나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니라 저와 같이 성경 공부를 한 성도들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금요일 저녁에 했습니다.

성경공부 또한 대단하게 흥미가 있다든지 잘 가르친다든지 교재가 좋다든지 않았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공부를 했는데 제가 생각해도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잘 참고 견디어 준 성도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삶이 힘들어도 시험에 들지 않고 잘 견디어 갑니다.

저는 두 가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나는 성경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 또 하나는 그 지루함을 참고 견디는 것. 기독교에는 교육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선생도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고 했고”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2. 가감 없이 지켜야 합니다.

본문2절에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0장7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신명기5장11절에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세 Roman Catholicism이 성경에 기독 된 천국과 지옥 외에 3가지를 더 첨가하는데 그것은 연옥, 선조림보, 유아림보 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는 곳이 선조림보이고,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이 가는 곳이 유아림보이며 연옥은 부분적으로 성화된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이라고 주장하며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 있는 조상이나 자식이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가르치다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말씀으로 개혁하여 기독교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가 위기라고 하는 것은 今世紀에 등장한 다원론에 기인합니다.

천국은 있는데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가지라는 주장입니다. 그 결과 갈수록 교회가 비어져 갑니다. 성수주일을 안 해도 착하게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동성애자들이 교회에 들어오고. 그것을 지적하면 ‘세상이 변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고 합니다.

New York times 1986년 7월 26일자에 소련의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보도하였습니다. 이 학자는 무신론자이지만 자기의 교양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8장 10절과 11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일곱 천사의 나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천사가 하나씩 나타나 나팔을 불 때마다 인류에게 재앙이 임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중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불붙은 별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별은 강에 떨어져 강물 3분의 1을 오염시키는데 그 물은 쓰고 독이 있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구절입니다.

이 무서운 별의 이름은 ‘쑥’이었습니다. 성경을 읽던 과학자는 소련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말로 ‘쓴 쑥’을 ‘체르노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자로 사고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던 것입니다. 소련 학자가 놀란 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그 무서운 재앙의 별과 실제로 재화를 당한 체르노빌, 즉 쓴 쑥이란 이름이 일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을 역사상의 어느 한 시간이나 한 사건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성경이란 어느 시대에나 해당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체르노빌의 경우는 우연의 일치치고는 무신론자를 놀라게 할 정도로 신통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이 사고로 부상자는 수천 명이고 그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핵 누출의 후유증으로 최소한 2천 명은 각종 암에 걸릴 가능성이 짙고 1만 명은 앞으로 20년 간 후유증의 발생을 두고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사실 체르노빌은 폐허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과정에서 어떤 면은 더하고 어떤 면은 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지켜야 합니다.

3.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13절에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십계명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는 증거로써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녕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4:20-21)고 하였습니다.

로마서13장8-10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이 말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헨리 G. 웨스턴의 말입니다. ‘성경 속에 있는 그 어떤 말씀도 당신 안에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먹는 음식처럼 당신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즉 당신이 말씀을 소화시켜 살과 뼈와 근육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누군가가 성육신하신 말씀인 구세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수천 번에 걸쳐 베들레헴에 태어나신다고 할지라도 당신 안에서 그 분이 태어나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미국 농담에 ‘거북이 교인(turtle christian)’이란 말이 있습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고, 사람은 12일간이고 개는 20일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백일을 먹지 않아도 살고 뱀은 8백일을 견딘다고 합니다. 곤충들은 1천2백일도 음식 없이 생존합니다. 그래서 참다운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신자는 ‘거북이 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구약성서 신명기28장1-14절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으며 자녀도 짐승도 체소도 곡식도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말씀을 잘 지켜서 큰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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