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올라가심

By 담임목사 on April 15, 2018

본문: 마가복음16장19-20절

제목: 하늘로 올라가심

우리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합니다. 나그네를 ‘제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해 놓았습니다. 노래 가사 중에 ‘정처 없는 나그네’라는 것이 있습니다. 갈 곳이 없다는 즉 目的地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과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갈 곳이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야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영어성경에 ‘하늘로’를 ‘into heaven’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와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까지 따라오라는 명령인데, 이 말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나그네 길의 종착지는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은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살아가는 불확실한 존재가 아니라 천국을 향해가는 확실한 존재입니다.

승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던 당시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찾아온 사람들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시면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면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과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승천의 사건은 예수께서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정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고,

2장1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이라고 했고, 3절에는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고 했고, 4절에는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믿는 자들의 나그네 인생길은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고, 그 인생길에서 우리 믿는 자들은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친교 후에 한 권의 책을 받아 들고 집에 가서 잠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47년’이라는 題目이었는데, 17살 홍안의 소년이 고향 평양에서 소련의 수용소, 시베리아 강제 노역, 여동생들과의 만남, 고향 평양이 아닌 서울로의 귀환, 그리고 어머니와의 만남, 그리고 기약 없는 이별, 가슴 아픈 망향의 세월을 대하면서 눈물과 감동이 교차했습니다.

승천을 인간사로 생각하면 기약 없는 이별이지요. 더 이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과는 영원한 이별입니다. 결코 되돌아설 수 없는.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승천이란 신비로운 새로운 시작입니다. 처음과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만이 존재하는 ‘into heaven’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건을 승천이라고 본문이 증거 합니다.

승천 이후 하나님께서 영접해 주십니다. 본문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니라”로 말씀을 마치셨다는 것은 육신의 몸으로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증거 해야 할 진리를 다 전하셨다는 것이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예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 대한 위로이며 그 수욕에 대한 영광의 보상이요 면류관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라는 말씀은 구속 사역의 완성을 뜻하고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구속 사역은 인간의 죄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몸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문제를, 부활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것이고, 승천은 사역의 완성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인간 생명의 완벽한 성취로써 생명의 의미를 최초로 완성시킨 ‘인자’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입니다.

승천 이후 생명이란 죽지 않는 것이라는 새로운 진리가 확립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전에는 생명은 죽은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 인간의 죽음을 완전하게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되고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서 완전 추방해 버린 것입니다.

본문19절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믿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시며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하셨다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고 계시며, 앞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심판주가 되어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히브리기자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예수 믿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죄로 물들었다는 말입니다. 전도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들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가 많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개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남겨두고 가는 제자들을 성령에게 위임하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2장4절 이하에 보면 오순절 날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고 권능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도 일어새우고, 귀신도 내어 쫓고, 각종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20절에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권능이 나타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시키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권능을 통하여 감화력을 행사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 십자가 부활이 증거 될 때마다 그 놀라운 감화력은 많은 사람을 회개시켜 죄 사함을 받게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되돌아간 뒤에 천사 장 가브리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못 자국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가브리엘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주님은 대단한 고통을 받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저들이 알고 고맙게 생각할까요? 저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저들이 안다면 좋겠는데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아 아니오. 아직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만 그것을 알지요. 가브리엘이 놀라서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는데, 무슨 방도를 취하셨나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그리고 몇 명의 다른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아마 내 얘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해줄 것예요.’

‘그렇게 하다보면 지구상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내가 그들을 그토록 사랑하였기에 목숨까지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가브리엘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의심쩍은 모습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한 마디 합니다. ‘그래요? 그러나 베드로나 다른 사람들이 지처 버리면 어떻게 되지요?’

그리고 그 후에 사람들이 주님의 이야기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지요? 뭔가 다른 방안이 꼭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브리엘, 난 다른 방안을 강구하지 않았다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믿기 때문이오.’ 예루살렘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이 복음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약 삼백년 후에 로마를 정복하고 세계를 정복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리의 승리이며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미국과 서구의 동맹국들이 시리아를 공습했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을 앞 세워. 얼마나 많은 살상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정의를 세우려 했지만 중동은 여전히 암울합니다. 그리고 그 끝이 언제지 모릅니다. 이러다가 동서분쟁 보다 무서운 분열과 대립 일어날지 불안합니다.

수 世紀 동안, 목숨을 건 전쟁보다는 그들에게 목숨을 걸고 복음 전파하였다면 지구촌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봅니다. 前線이 없는 terror와의 전쟁, Akron도 완전하다 할 수 없습니다. 雪上加霜 미국의 Trump 대통령의 미국 우선의 경제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고결한 릴라데스는 그의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위대한 저술가요 심오한 사상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물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그의 마음의 사랑이요, 그의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는 행위 가운데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이셨는가? 그렇다. 십자가를 벗기고 보라. 그것은 우리에게 그의 마음을 보이시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수고하는 무한한 사랑이며, 무한한 사람의 충만함을 언급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랑이다. 그러한 행위와는 별도로 가없는 사랑의 바다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감추어져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랑의 바다 운하가 발견되었고, 하나님은 이것을 넘어가시지 않는다. 따라서 단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이 증거가 우리 가운데 역사되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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