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

By 담임목사 on September 30, 2018

본문: 마가복음11장201-25절

제목: 할 수 있다

오늘 분문에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과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믿으면 된다. 믿으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황금을 아주 좋아하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황금을 사들려 아무도 모르게 지하에 비밀금고를 만들어 놓고 쌓아 갔습니다. 비밀금고가 다 채워져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른데, 어느 날 무릎이 아파 지하에 금고에 내려갈 수 없게 되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일생을 황금을 모으느냐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이에 불만을 가진 두 아들에 객지로 나가 명절에도 집에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두렵고 불안한 날들이 지나갑니다. 원체 지독한 구두쇠로 소문이 나서 아무도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죽을 때가 다 된 것을 안 영감이 아들들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유서를 요약하면 ‘내가 죽으면 누구든지 시골로 내려와 이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어 살면서 대를 이어라 그러면 자손 3대가 잘 살게 될 것이다’였습니다. 그리고 몇 칠 후에 혼자 고독하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일주일에 두서너 번 우편배달을 하는 아저씨가 우편물이 그대로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한 달여 만에 방을 들어가 죽어 있는 영감을 발견하고 신고를 합니다. 경찰이 수소문 끝에 아들들을 찾아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에 온 아들이 아버지의 유서를 보고 평생 구질구질하게 고생만 시키더니 죽어서도 우리에게 고생만 시키려 한다며 장례를 치루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매일 읽은 성경이 바로 이 遺書 같은 것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믿음으로 대하면 자손만대가 복을 받아 잘 산다고 하면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셨지요. “내가 지시 땅으로 가면 내가 너에게 자손만대에 복을 주겠다.”고 본문을 통해 그 방법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어야 합니다.

본문22절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여, 주여 하는데, 그 주를 어떤 주로 믿느냐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17:8) 나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주로. 무엇이든지 주실 수도 있고 다시 취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7:2) 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처럼 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와 모든 교회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와 교회 위에 예수도 없고 십자가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학문과 과학과 지식의 범주 안에 두거나 그 아래 두려는 자세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감성과 오감으로 이해하고나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며 달려갑니다.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만 믿으려 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눈으로 지구전체를 볼 수 없고 미생물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영감 이야기에서 어부지리 한 사람은 배달부입니다. 이 사람은 맨 처음 유서를 발견하였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스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일 년여 배달하며 지나쳐도 집으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배달부는 그 유서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그 유서에 뭔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동의를 했고, 아들들을 설득해서 집을 구입하고 유서에 쓰인 대로 집을 헐 물고 새 집을 짓자 지하 비밀금고에서 황금 덩어리가 쏘다져 나왔습니다.

믿음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확신을 갖고, 스스로 동의하고 설득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의 하시는 일에 동의하고 그 말씀에 설득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2.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 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 인생사가 자꾸 꼬이는 것은 의심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설마 그것이 그렇게 되겠어.’ 낙심하거나 포기해 버리기 일쑤지요.

疑心(의심)을 국어사전에 ‘확실히 알 수 없거나 믿지 못해 이상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한 마디로 판단이 엇갈린다는 뜻입니다. 인류 최초의 죄는 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善惡果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 같이 된다는 뱀의 유혹에 의심이 생기고 판단이 엇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은 의심을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면 의처증 환자고,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면 의부증 환자가 됩니다. 목사가 성도를 의심하면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잘하려고 그러겠지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성도가 목사를 의심하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韓半島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고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북미간의 핵문제, 미중간의 무역 분쟁.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의심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몇 게를 감추면 어떻게 하나. 북한은 다 내주고 미국이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하나. 서로 신뢰할 때 핵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한국에 미국관광객과 중국관광객이 모두 들어옵니다. 중국 관광객은 발이발이 사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미국관광객은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합니다. 한국이 미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한국 사람은 면도기 고장라면 버리고 새 것으로 구입합니다. 미국 사람은 고처 씁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스스로를 믿고 못 믿고의 차이입니다. 의심은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고 국제적 관계를 파괴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심하면서 믿는 척 하는데 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손바닥에 못 자국을 만져 보고 믿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20장27절에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도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주시어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그는 손으로 창 자국이나 못 자국을 만지지 않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야고보사도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비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고 이런 사람을 가리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사 말하면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의심은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할 뿐 아니라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황무지로 만듭니다. 의심으로 하와를 꼬였고, 가롯유다를 넘어뜨렸던 사탄은 의심으로 우리도 넘어뜨리러 우는 사자와 같이 혈안이 되어 우리를 삼키려 하는데, 성도여러분! 믿음으로 물리칩시다.

3. 기도는 응답됩니다.

본문23절에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 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산을 옮긴다는 말은 곤란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지리산이나 한라산보다도 험하고 높은 문재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만나면 ‘아이고! 나는 참 재수도 없지 한 고비 넘긴 줄 알았더니’ 낙심하여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어’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는 용기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문제로 상담을 하게 됩니다. 항상 대답은 ‘기도하세요. 기도 하겠습니다.’입니다.

목사라고 별 뾰쪽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일지요. 그런데 매일 습관적으로 새벽마다 기도하다 보면 온갖 문제가 기도를 통해서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 늙어 보니 늙은 여우가 독을 깬다고 모든 것들이 훤히 보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24절에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는 말씀입니다. ‘기도합시다.’하니까 돌아서면서 기도한다고 무슨 수가 있겠어. 그러니까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은 그대로 될 줄로 믿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주님 안에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능력과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우리 주님의 능력을 내가 가지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믿고 기도 합시다. 그러면 태산 같은 문제도 뚫고 나가 승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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