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는 삶

By 담임목사 on August 23, 2020

본문: 빌립보서4장4-7절
제목: 항상 기뻐하는 삶

로마 監房에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쓴 편지에 18번이나 ‘기뻐하라’ 했는데, 獄에 갇혀 죽음이 목전에 이른 줄 알고 있는 바울의 평온함과 기쁨과 친밀함 그리고 생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人間的으로 보면 기뻐해야할 조건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통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 ‘기뻐하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또한 左右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자유로운 자 같으나 갇혀 있어 고통스럽고 곤욕스럽기 그지없는 환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에 바울은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신령한 기쁨을 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것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라는 신앙적인 기쁨입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예측도 못했던 일들이 人類를 위협하고 있는 때에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까지 겹쳐 도무지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어 그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위기에 처한 우리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하는데 그 의미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그 누구보다도 확실한 구원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다메섹 석상에서 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그 음성을 듣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아니 어떻게 ‘나 같은 罪人 불러 주시고 원수 같은 나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3장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자신이 구원 받은 사실을 확실하게 외치며 오늘 날 우리에게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정의롭다’ 외치며 平等을 주장하며 극열하게 人權運動을 하던 指導者들이 자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죽음’이란 세상 누구에게나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은 사형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어떤 罪人이 사형언도를 받고 十餘 년을 교도소에 살다가 어느 새벽 형장으로 들어가 교수대에 서서 마지막을 유언을 남기고 목에 밧줄을 걸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잠깐 중지하시오 이 사람은 특사를 받아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습니다.’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자, 밧줄이 겉치고 형장을 빠져 나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쁜 순간입니까?

로마서6장23절에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는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써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우시고 사함의 은총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한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바울은 로마 監房에서 이 은총을 받고 영생을 확신하고 감격하여 기쁜 나머지 ‘항상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비록 고통스러운 일들이 이어진다고 해도 바울처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쁨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舊約聖書 創世記 5장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牧會자로 牧會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항상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리 左右를 살펴보아도 편들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Corona 사태에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때에 저는 하루도 편하게 잠자리에 들지 못합니다. 혹시 감염되지는 않았는지? 장사들은 잘 되는지? 직장은 온전한지? 그저 기도밖에 없어 열심히 기도만 합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저에게 빈 말이라도 ‘목사님, 형편이 어떠시냐?’ 묻는 사람이 없습니다.

牧會자는 靈的으로는 성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이고 肉的으로는 성도를 믿고 의지하여 사는 자입니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조금 힘들다고, 아우성치며 온갖 不平不滿 다하면서 몇 달치 사례비도 제대로 못 받는 목회자에게 그 누구 하나도 밥은 먹고 사는지 묻는 사람 하나 없어 섭섭한 마음 금할 수 없을 때,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로가 되고 모든 근심과 염려가 사라지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11장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12편1-2절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世上事는 아침안개와 같은 것으로 우리가 잠시 머물러 지나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손을 잡고 동행한다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世上事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간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참고 견디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남자들은 모이면 군대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고 합니다. 저마다의 武勇談을 다 합치면 벌써 南北統一 되고도 남습니다. 週末이면 늘 변함없이 면회를 오는 戀人이 있어 많은 전우들에게 부러움을 사던 兵士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심하게 부상당해 도시의 큰 병원으로 후송을 갔습니다.

兵士의 부탁을 받고 戀人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한 숨에 달려와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한 쪽 다리가 없는 것을 보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 나가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고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지만 世上事 모두 같지 않나 싶어 의지할 사람도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로마서8장38-39절에 바울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찬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다 더 확실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당장 암담하다고 생각하여 절망이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모두 다 해결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기뻐하며 살아가노라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크신 사랑으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기뻐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헌신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지의 땅에서 헌신 했고, 어떤 사람은 문둥병환자와 함께 했고, 어떤 사람은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믿음의 사람들은 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기쁨을 가지고 헌신하며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을 기쁨과 주님이 도우시고 보호하신다는 확신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성도같이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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