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By 담임목사 on January 28, 2018

본문: 요한복음2장1-11절

제목: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항아리는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부른 질그릇을 이르는데, 우리 韓民族에게 아주 익숙한 생활이요 문화요 역사입니다. 독이라고 하는데 ‘장독’이라고 집집마다 간장 항아리, 된장 항아리, 고추장 항아리를 올려놓고 보관하던 곳입니다. 그리고 늦가을이면 김장을 해서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으면 김장항아리, 물을 담아두면 물 항아리가 됩니다.

이 항아리들이 가득차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행복을 느꼈던 시절이 그립고 생각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상하수도 시설이 안 되어 물을 길어다 먹었습니다. 우리 집도 조금 높은 언덕 위에 있어 산 아래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저도 새벽 일찍 일어나 열두 동이를 항아리에 깨워야 밥을 먹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항아리는 삶이 애환이 담겨있는 인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장독 크기가 그 집의 富의 상징했지요. 우리 고전 전래동화 가운데 ‘콩쥐팥쥐’라는 것이 있는데, 이 야야기에 항아리가 등장을 합니다. 콩쥐 엄마가 죽고 계모가 들어와 낳은 딸 팥쥐를 편애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계모가 콩쥐에게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고 팥쥐와 외출을 합니다. 끝없이 길어다 부어도 채워지지 않은 항아리에 두껍이가 구멍을 막아주어 물을 채우고 꽃신으로 말미암아 고을 원님과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오늘 본문에도 항아리가 나옵니다. 물 항아리와 포도주 항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처음으로 일어난 사건이 물로 채운 항아리에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이적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결혼식에 간 것을 보면 아마 예수님의 친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제는 예상보다 賀客이 너무 많이 와서 포도주 항아리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자 잔치 집 분위기는 냉랭해집니다. 신랑 부모의 당황한 모습을 우리가 능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일하고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항아리에 구멍이 나기도 하고 가큼 항아리를 채운 것들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족하고, 아프고, 문제가 어렵고, 이렇게 저렇게 일들이 꼬이고, 실타래처럼 일들이 뒤틀리고,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고 죽고 싶도록 낙심되고 그래서 요행이나 바라며 두껍이가 절실하고, 꽃신 주인을 찾은 고을 원님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래동화 說話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쌀 항아리, ‘뒤주’라고도 하지요. 이 뒤주가 비면 당장 굶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과 사의 문제였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아득한 옛날이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님께서 잠간 피난민촌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사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집이 대학근처에 방이 7개 있어 하숙을 처서 생활을 하는데 문제는 방학 때입니다. 그때도 대학 방학이 좀 길어서 힘들었습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방학해서 돌아가면 교회가 설령해지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하루는 부모님이 심방을 가셔서 저녁때가 되었는데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막내 동생이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리며 웁니다. 이제 곧 오시겠지 대문밖에 나가 기다리는데 밤이 늦도록 오시지 않습니다. 동생이 둘이서 배고프다고 철없이 보채자 막내누님이 부엌에 들어가서 밥상을 차려서 대청마누에 나옵니다. 동근 밥상에 둘러앉으라고 동생들과 저를 부릅니다.

국그릇 밥그릇 주저 저분, 그리고 간장종기 고추장종기가 놓여있습니다.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막내 누님이 기도하자고 하더니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자 대문 여는 소리와 함께 ‘동진아!’하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전에 아랫집 살던 순이 엄마와 순 이가 국과 밥, 김치 쌀자루를 들고 들어섭니다.

순이 엄마가 저녁쌀을 씻다가 실수로 더 많이 밥을 하고 기도 중에 ‘동진이네 집에 가봐라’는 음성을 듣고 남은 밥과 국 김치를 싸가지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 시절 모두 힘든 시절인데 우리는 아버님 대학에서 강의를 하셔서 밥은 굶지 않고 먹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근 십년동안 그 무엇도 우리 끼리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 집도 형제가 많아 먹고 살기 힘들고 아이들 공부시키느냐고 어려워 우리가 수박 먹으면 그 집도 수박 먹고 무엇이든지 나눠 먹었습니다. 저는 그지 긴 세월을 살지는 않았지만 단 한 끼도 굶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막내 누님의 기도하는 믿음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찬송 받으시기까지 쉬지 못하게 하라”(사6:7)

이 말은 주님께서 쉴 틈이 없도록 부르짖어라, 주님을 자꾸 청하라는 것입니다. 자꾸 청하여 주님께 물어보고 주님을 활용하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잔치 집 부족한 포도주는 5절에 “무슨 말씀을 하시거든 그대로 하라”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말을 순종하여 빈 항아리에 물을 부었기 해결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왜 부족하고, 아프고, 문제가 어렵고, 이렇게 저렇게 일들이 꼬이고, 실타래처럼 일들이 뒤틀리고,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고 죽고 싶도록 낙심됩니까? 빈 항아리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리만 요란할 뿐이고 물이 없으니 먼지만 가득한 실속이 없는 것입니다.

빈 항아리에 물이 들어가야 소리가 없어지는 것처럼 빈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합니다. 물을 채우자 빈항아리에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물 항아리로 포도주 항아리로, 빈항아리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빈 항아리는 소리만 요란합니다. 믿는 성도들도 속이 비어 있으면 마귀소리만 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 이름이 부쳐지는 것처럼 우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근 삼십년 동안 원고를 써서 설교를 했습니다. computer 안에 원문이 거의 들어 있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 가큼 들어다 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거든 그대로 하라”는 메시지를 수없이 전했습니다.

문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고, 아예 듣지 않고 그러니 소리만 요란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담을 넘어 온 동내를 요란하게 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내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느냐고?’

한국교회에서만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세습을 가지고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습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저는 외동아들이 있습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아들에게 목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아들이 돈 많이 벌은 것이 꿈이라며 목사는 안 하겠다고 합니다.

그 후로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보면 하나님께서 레위사람을 구별하시고 그들에게는 기업 즉 땅을 나누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타 지파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아론으로 제사장직을 하게 하시고 그 자녀에게 제사장직을 승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하거나 부정하면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없고 따라서 그 헌물을 먹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사무엘상2장22절에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라고 했고, 4장11절에는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죄를 범하고 부정하여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언약궤까지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엘리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구약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아리에 물을 채웁시다. 성경에서 물은 성령을 뜻합니다. 성경에 물은 믿음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은혜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소망과 사랑을 뜻합니다. 에스겔서47장 앝은 물가에 있는 선지자가 일천 척을 들어가면 무릎에 차고, 또 일천 척을 들어가면 허리에 잠기고, 또 일천 척을 들어가서 온몸이이 잠기니 이것은 은혜의 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교회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나이가 들수록 온몸이 쑤시고 아파 아이고! 곡소리가 요란합니다. 은퇴 준비도 전혀 하지 못해 미래가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비가 오면 지붕이 세지는 않나 추우면 우리 아이들 감기는 걸리지 않나.

하루저녁에 여러 번씩 걱정스러움에 잠에 깨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 5시간만 계속 잠을 자기 위하여 하루 일천 척씩 은혜의 물에 자신을 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와서 내게 배우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 이 자리에 물을 채우기 위해 나왔습니다.

물이 채워져야 그 근거로 주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혼인잔치 집에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니 주님께서 포도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사르밧과부도 그냥 살리시지 않았습니다. 과부가 가진 기름 항아리, 밀가루 항아리를 내놓도록 하시고 그 항아리가 마르지 않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항아리에 물을 채웁시다. 물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주님의 기적입니다. 물을 채웁시다. 채우더라도 하나 가득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채워야 합니다. 말씀으로 채우고, 기도로 채우고, 성령으로 채우고, 성령으로 채우고

우리가 채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필요하신 대로 쓰이도록 기도하고, 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어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보람 있게 살며 주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빈 항아리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 곳에 물이 들어갈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처럼 빈 항아리 같은 우리 속에 주님이 능력이 하실 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물을 채웁시다. 그리고 축복받아 부족하고, 아프고, 문제가 어렵고, 이렇게 저렇게 일들이 꼬이고, 실타래처럼 일들이 뒤틀리고,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고 죽고 싶도록 낙심되는 일들이 해결되는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 그리고 기업과 직장에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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