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

By 담임목사 on May 27, 2018

본문: 시편128편1-6절

제목: 행복한 가정

家庭을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자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해 놓았습니다. 혈연의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피를 나눈 사람들이 얽혀 사는 곳인데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가정은 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하는 곳이 보시기에 좋지 않아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도록 섭리하셨고 그것이 오늘 우리네 가정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喜怒哀樂이 가정에서 시작하고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28편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 중 하나인데, 이 노래의 배경은 한 가족이 모두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성전에 올라가는 모습이고 이 칭찬하면서 가정에 임할 하나님의 은총이 어떤 것인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인가요?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본문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10장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생이여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율법사에게 되묻습니다. ‘율법에 뭐라고 해냐?’ 율법사가 대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께서 ‘그래 그 말이 맞다 너도 가서 그렇게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이 對話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말로 쉽게 하면 주일날 온 가족이 교회가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0장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고벨료의 이야기입니다. 3절에 보면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고벨료를 부릅니다. 4절에 천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기도했다는 것은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고 구제했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는 말과 기억하신바 되었다는 말은 영생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미국사회의 가장 큰 공포는 전쟁도 terror도 아니고 총기사고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총을 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중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나고 교회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무분별한 靑少年의 탈선과 범죄 그리고 마약까지, 그 끝이 어디인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릴 때 선교사 자녀들과 어울려 눈싸움을 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이기려고 되도록 눈을 차돌같이 단단하게 만들어 던지는데 선교사 자녀들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눈싸움을 즐깁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깨우쳤는데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었습니다. 그리고 ‘배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미국영화를 보면 마차나 자동차를 타고 온 가족이 교회 가는 장면이 한 번쯤은 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 가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60년 John F Kennedy 대통령이 되어 미국 국공립학교에서 전통적으로 실시해 오던 기도와 예배 그리고 성경과목을 자율이라는 명목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성경과 기도가 사라진 교육의 결과가 중학교 총기사고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느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당신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 위해 받은 Stress로 평생 병치레하며 살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공부를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행복은 지식도 재물도 미모도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2. 정상적인 가정입니다.

본문2절에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먹고사는 가정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을 땀 흘린 소산을 먹은 것이라고 합니다.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정상적이라야 합니다. 道德的 倫理的 가치관도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돈을 벌고 쓰는 방법도 정상이라야 합니다.

지난 주간 한반도가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수고하지 않고 덤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배려가 없는 사고방식의 그 결과입니다. 구약성서 여호수아서 7장에 보면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를 합니다.

7장21절에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아간의 이실 질고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탐심이 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이끌렸고 전쟁에 패배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실패와 환란과 고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원인을 재거하지 않으면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이유가 우리 울게도 하며 웃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은 이것쯤이야, 설마라는 생각입니다.

한국사회는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지 않고 불안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평화와 안정을 갈망합니다. 저는 이중국적자입니다. 반절이 한국 사람이고 반절은 미국 시민입니다. 러시아 word cup 예선에 미국이 떨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2002년에는 미국 시민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이 게임할 때 일방적으로 한국을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과 미국이 만나 경기를 한다면 애매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실제로 한국에서 30년을 살았고 미국에서 38년을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 미국에서 이민 온 것이 얼마나 축복이냐며 모르는 척 한다, 속으로 기도한다.

다양한 반응이 나오겠지요? 저는 애국자는 아니지만 두 가지 중 하나를 할 각오입니다. 첫째 two job이라도 뛰어 한국으로 송금한다. 또 하나는 한국으로 들어가 돌이라도 나른다. 저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기성세대가 같은 생각을 할 줄로 압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바로 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 반도를 위기일발의 긴장된 휴전선을 목전에 두고도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한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종용히 일하여 저기 양식을 먹으라.(살후3:11-12)” 했으면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3. 내실이 평안한 기정입니다.

본문3절에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실’는 안방이나 가정을 의미합니다. 안방마님이라는 말처럼 내실은 아내가 자리하고 있고 식탁에는 어린 자식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그곳이 가정이어야 하며 거기가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큼 이야기 하지만 우리 어머니에게 두 가지 습관을 배웠습니다. 하나는 절대로 물건 값을 흥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조금 속는 것 같아도 한 집만 다닌다. 그리고 아버님에게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평생을 급하게 뛰는 모습을 본적이 없습니다. 조금 답답하지만 실수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자라면서 공부해라, 일찍 들어와라, 혼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언제든지 집에 가면 아랫목 이불속에 놋그릇에 밥이, 부엌 부뚜막 위에 된장찌개 옹기가 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그립고 애절합니다. 칠십에 다 된 이 나이에도 그 어머니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 어머니의 온기는 때론 나를 낮추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인내하게 하고, 때론 나를 치유하기도 하고, 이웃을 용서하게도 하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게도 하고, 절망가운데 희망을 주기도 하고, 환난 중에 피할 바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웅덩이에서 나를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그 어머니가 계신 것이 안방인데 그곳은 늘 행복합니다.

4.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가정입니다.

본문5-6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온’은 지상의 하나님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그곳에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거룩한 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세습논란에 빠져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나 억지로 감행하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가 아닌 가 싶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시온, 즉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예루살렘 사람들 즉, 성도들이 가정들이 거룩한 성전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성전을 사모한 가정, 신령한 복을 갈망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주일이면 온 가족이 교회로 나와 예배드리고 신령한 복을 받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경제적 위기와 도덕적 위협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차 삭막해져 교회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합시다. 개인도, 가장도, 교회도, 국가도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예루살렘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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