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삶

By 담임목사 on August 25, 2019

본문: 디모데후서4장6-8절
제목: 후회 없는 삶

짙푸른 여름의 더위가 절정을 지나 그 기세 꺾어 朝夕으로 차가움이 수족에 스며드는 8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어느 詩人이 여름을 ‘가난한 사람들이 풍요로운 계절’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산책길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니 허전한 마음이 온 몸을 덮어 쓸쓸함이 가슴 깊이 밀려옵니다.

그 길에 잠간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니 많은 날들을 지나버린 추억인데 왠지 신기루처럼 멀고 낯설기만 한 것이 손에 쥔 것도, 호주머리 속에 넣어 준 것도, 남겨 준 것도 없는 후회뿐인 고달픈 인생살이 탓에 8월의 여름 풍요로움이 애달프게 그리워서가 아닌 가합니다.

본문에 사도바울은 산책길이 아닌 로마의 監獄에서 최후를 기다리며 찬란한 부귀와 명예를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님의 사도가 되어 온갖 고난과 시련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던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며 쓴 글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찬란해 보입니다.

사도바울은 부름과 떠날 기약을 눈앞에 두고 자신이 걸어온 날들을 뒤돌아보며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진정 행복하고 후회 없는 인생일진데, 8월의 풍요로움만 그리워하니 우리네 삶이 고달프고 시련의 연속일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산 사도바울이 본문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라고 후회 없는 삶의 근거를 말하는데 말씀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선한 싸움을 드렸습니다.

본문 7절에 상반 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에는 두 가지를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 군병의 용사로써 자신의 삶을 회고한 것인데, 우리 믿는 성도들은 사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군사요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군사의 성격을 띤다는 의미로 성도들의 삶이 전쟁과 같아서 세상을 살면서 마귀와 싸워야 하고 세상의 죄악과 치열한 전투를 벌려야 하는 부름 받은 십자가의 용사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전투에서 자신을 남김없이 하나님의 전 앞에 쏟아 놓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2-24)고 다짐합니다.

둘째는 경주자로써 자신의 삶을 회고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에베소서6장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정부와 군인 그리고 이단과 적그리스도 그리고 환난과 역경과의 싸움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경기에서 싸워 이겼다는 말로서 그 누구도 바울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연역한 자 같으나 강한 자요, 넘어지는 자 같으나 실상은 일어선 자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바울과 같이 선한 싸움을 싸워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달려갈 길을 마침으로 드렸습니다.

본문7절 중반 절에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라고 했는데, 바울은 자신 물론 모든 성도들의 삶을 달음질하는 경주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12:1)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 달려야 하는 인생의 모든 코스를 끝까지 달려왔음을 확인하고 행복하고 감사해서 안도의 한 숨을 깊게 내쉬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이 아니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길을 온 힘을 다하여 달려와서 맞는 완성의 기쁨과 보람의 즐거움을 본문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모든 자들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명을 부여받고 주님께서 정해주신 코스를 달려가는 경주자들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사명과 과정이 달라도 그 목표는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힘들어 견디지 못하고 중간 포기하고나 낙오가 되기도 하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라는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23-27절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자신이 온갖 고난을 이기고 달려온 인생길을 기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길에 최선을 다한 경주 자였을 뿐 아니라 마침내 목표하는 결승점에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고백처럼 우리들도 인생의 끝자락에서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믿음을 지킴으로 드렸습니다.

본문7절 “내가 믿음을 지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말씀이 ‘지켰다.’는 말씀이고 우리가 드려야 ‘믿음을 지킴’이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것을 사자굴 속에 뛰어드는 것, 불 속에 던져지는 것, 금세기에 들어서는 복음을 들고 나서는 것, 윤리적 가치에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지키는 것을 예배를 드리는 것, 성수주일 하는 것, 십일조를 드리는 것, 기도하며 봉사하는 것 등 우리가 늘 해오던 것이고 또한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이로 인하여 후회하며 슬피 울고 이를 갈 날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음만은 굳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내 인생이 8월의 풍요로움만 그리워하는 삶이 아니라 바울처럼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의 다하는 순간 후회함이 없이 살았노라는 고백이 간증이 되고 찬양이 되기를 바랍니다.

굶주린 이리가 한 마리가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다 살쾡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뒤쫓아 갔습니다. 살쾡이는 황급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 굶주린 이리는 살쾡이를 올려다보며 웃는 얼굴로 말합니다. “어이, 우리 동생 범 맞지? 범 동생, 이게 얼마만이야?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난 멀리서부터 널 알아보고 이렇게 쫓아왔지. 그간 별고 없었어?” 살쾡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짐승 잘못 봤소. 난 살쾡이요. 난 범도 아니고 당신 동생도 아니란 말이오!” “아니, 아니야! 틀림없이 우리 범 동생이야.” 굶주린 이리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합니다. “너의 그 날씬한 몸매와 억센 꼬리, 캄캄한 장막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불타는 눈빛. 틀림없어. 범 동생, 이리 내려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나 나누자고. 너한테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

살쾡이의 두려움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래도 의구심은 가시질 않았습니다. “난 정말 살쾡이요. 정말이라니까” 이리는 잠시 몸가짐을 바로잡는 척하며 고개를 돌려 눈물이 찔끔 나도록 킥킥 웃고는 다시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동생은 모를 수도 있겠군. 살쾡이가 범을 낳은 게 벌써 5만 년 전의 일이니까. 이치대로 따지면 살쾡이는 범의 선조지. 범이 산에서 뛰어다니는 기술도 실은 살쾡이가 가르친 것이야.

그리고 우리 이리는 범과 한 집안 짐승이고. 아이쿠, 이런, 나 좀 봐! 이런 큰 실례를! 그러고 보니 동생이라 부를 수도 없겠군요. 촌수를 따지면 나보다 한참 위시니까. 살쾡이님, 말씀 낮추시고, 어서 내려오셔서 이 이리의 절을 받으십시오.” 살쾡이는 허둥지둥 나무에서 내려와 넙죽 엎드린 이리를 급히 부축해 일으켰습니다. “절이라니,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뒤돌아보았습니다. 물리적으로는 큰 사고가 없는 한 99살을 살 것 같다고 합니다. 뭘 하고 살지 걱정이고 두렵습니다. 동료 목사들은 은퇴 후에 선교를 한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저는 은퇴 후에 목사직을 내려놓고 평신도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여기저기 동냥하듯이 나서고 영감노릇보다는 일생 목회의 경험을 설교나 훈계가 아닌 평신도로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성도들의 귀감이 되고 ‘아! 예수는 저렇게 믿는 것이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훌륭한 목사나 칭송받는 목사가 아닌 평신도로서 하나님 앞에 서서 평가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이리란 놈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속삭이듯 말합니다. ‘너 아니면 안 돼’

그래서 하루에도 수 없이 ‘하나님 저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한 면류관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라고 독백하듯 외칩니다. 이 고백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의 고백이 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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