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성도

By 담임목사 on November 3, 2019

본문: 데살로니가전서1장1-4절
제목: 힘 있는 성도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3차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 디모데에게 쓴 편지로 비교적 짧고 단순한 내용이지만 초대교회의 모습과 바울의 선교활동을 상세하게 살펴 볼 수 있고 디모데의 보고를 받고 답장형식으로 썼지만 사도바울의 첫 著書로 큰 의미가 있고 이 책에서 바울을 ‘택하심’의 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택하심은 ‘고르다. 선택하다.’ 뜻이고, 英語로 ‘골라잡다’는 뜻으로 ‘Pick’인데, 본문에서는 原語적 意味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진 절대적 선택’이라는 뜻으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으로만 가능하니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교훈합니다.

改新敎 중요한 敎理가운데 하나인 ‘택하심’은 사도바울이 쓴 모든 著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4절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확실한 증거로 그들에게 어떤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中世紀 ‘Roma Catholicity’는 이 힘을 ‘면죄부’에 있다며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 있는 사람이 天國으로 옮겨 갈 수 있다고 해서 팔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동방교회는 이 힘으로 政治에 참여함으로 쇠퇴를 길로 접어들었고 종교개혁 후 ‘택하심’을 ‘예정론’이라는 신학적 論爭을 오늘 날까지 이어 오고 있는데 사도바울이 인정한 힘이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음의 역사라는 힘입니다.

新約聖書 히브리서11장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고, 본문에는 “너희의 믿음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세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생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믿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믿음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동일한 고백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믿고 따르던 모든 우상과 결별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과 교회를 세우는 예배와 서로 사랑하는 행동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믿음의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7장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세워 나가는 과정과 주의 종들을 위하고 성도가 서로 아끼는 실제적 행동으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헬라인들로서 유대인의 회당에 출입하며 헬라의 神話와 유대교의 창조주 하나님을 함께 믿고 따르던 자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인의 회당에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의 사건이었습니다. 부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온 인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 날부터 유대인의 교법사를 따르지 않고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고 또한 헬라의 神話와 우상들을 버리고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眞理와 敎訓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한 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모임을 갖고 교회를 세워 나갔습니다.

또한 그들은 유대인들의 온갖 박해와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갔고, 사도바울의 설교와 권면 그리고 격려와 강론을 사람의 말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운동을 일으켜 새 힘을 얻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 믿음의 역사를 세워가는 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時代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온갖 지탄과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말만 잘한다.’ ‘저밖에 모른다.’ 이런 모습을 ‘Augustinus’는 ‘이해는 신앙의 대가다. 그러므로 당신은 믿으려는 바를 이해하려 들지 말고 당신의 이해하고 싶은 바를 믿으라.’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이해하려고만 하니 이렇게 말합니다. ‘보이는 것을 믿는다.’고,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고 머리로 이해하려고만 하고 손과 발을 묶고 사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외침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은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히10:23)

2. 사랑의 수고라는 힘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1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했고

그리고 13절에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고, 본문3절에 ‘사랑의 수고’의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주려 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수고 뒤에는 다양한 문제가 따라옵니다. 오해받는 일도 생기고, 귀찮은 일도 있고, 때로는 짜증스럽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쾌한 것도 참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하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자들을 향해 누가복음10장30절 이하에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내버려두고 갔는데, 때마침 그 길을 가고 있던 제사장과 레위 인이 그 현장을 보고도 그냥 스쳐지나갔다.”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의 직분 자들인데 왜 그냥 지나갔습니까?

한 마디로 관심을 가지고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쏟아 붓는 일이 너무나도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귀찮은 일을 가급적 피하려고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들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남들이 피하려고 하는 일을 찾아내 기쁨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여 집사님이 어떤 여 집사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왜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지 아세요?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녀는 언제나 나로 하여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거든요.’ 생활 속에서 마음에 심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문제이며 정신적 자질의 문제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사랑은 위대한 기적을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Hadfield’는 ‘힘의 심리학’이라는 자신의 著書에서 한밤중에 군수품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부인이 남편과 아들이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 폭발음이 들리자 잠자리에서 일어나 단숨에 7마리를 달려서 공장까지 왔다. 그 여자를 겉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자의 가슴속에 바로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우리에게 기적을 가지고 옵니다.

3. 소망과 인내의 힘입니다.

본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이 있으므로 때때로 앞을 가로막은 고난 앞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참고 견디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의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고 했습니다.

‘Paul Hill’는 소망은 세 가지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소망은 우리에게 장차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준다. 둘째는 소망은 우리에게 그 기쁨과 행복의 실상을 드러내 준다. 셋째는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그것들을 기다리게 하며 그것들을 위하여 모든 고난을 견뎌 내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해질녘에 백발 老人이 찾아와 밥 한 그릇을 청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즐겨하는 아브라함이 한 상 잘 차려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老人이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자라 식사 전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안 하고 수저를 드립니다. 화가 난 아브라함이 老人을 당장 내 쫓으라고 불호령을 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말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참아라. 그 老人을 내쫓지 마라. 내가 그 老人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고 100년을 참았다.’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의 조급함을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특별한 힘이 있기를 축원 합니다.

모든 힘은 나름대로 고귀하고 위대하지만 우리에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라는 힘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신령한 꽃을 피우고 향기로 토하며 영적 열매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하여 거룩한 힘과 영향력 발휘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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